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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서효봉] 우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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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봉 소설가

서효봉 소설가
서효봉 소설가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집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책장 가득 꽂아두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나 또한 가끔 그런 상상을 했지만 아쉽게도 이루지 못했다. 대신 도서관에서 일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요즘 들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대출하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같이 일하는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민음사빵 모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민음사가 빵도 만드나?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 서둘러 검색했다. 민음사빵은 'GS25'와 '민음사', '오늘의 귀여움'이 협업해 만들었다고 한다.

기사를 훑어봤다. 민음사빵 5일 만에 10만개, 2030 유행. 품절! MZ 넘어 '아재'들도 열광한 민음사빵. 좀 더 검색해 보니, 누적 판매 12만개 돌파 민음사빵, 직원도 못 먹어봤어요. 라는 기사 제목도 보였다. 2030 난리 난 빵의 정체는? 나는 난리는커녕 이름도 처음 들은 아재라서 그 모든 게 신기했다. 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오픈런하는 사람도 있고, 빵 봉지에 든 책갈피 굿즈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에 거래하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 걸까? 기사 대부분이 '텍스트힙' 트렌드가 반영된 문화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독서라는 취향을 소비하는 세대, 특히 2030 여성들이 그 흐름을 주도한다고. 누군가는 이걸 발터 벤야민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민음사라는 문화적 '아우라'가 복제되면서 예술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고. 그게 아니면 르네 지라르식으로 해석할 수도. 민음사라는 대상 자체를 욕망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는 모방 욕망의 개념으로. 참 어렵다.

절에 가면 불교 경전을 외우지 않아도 경전을 깨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있다. 나무 탑처럼 생긴 장치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를 밀면 된다. '윤장대'라는 이 장치는 어려운 불교의 가르침에 쉽게 닿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경전을 모른다고 절에 못 가는 게 아니듯 책을 읽지 않았다고 민음사빵을 못 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제 책장에 민음사빵이 꽂혀 있는 걸 상상해본다. 오늘은 '사랑에 대하여'를 먹고, 내일은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먹어야지. 모레는 '오만과 편견'을 먹을 예정이다. 그렇게 빵을 냠냠 먹으며 투명 책갈피를 모은다. 레미제라블 책갈피, 이걸 어디 쓸까. 레미제라블에 끼워볼까.

물론 잠깐의 유행일지도 모른다. 금방 사그라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28년 동안 394개 작품을 소개하며 올해 500권째 책을 출간했다. 긴 시간 이것을 이어온 누군가의 노력이 없었다면, 민음사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겼을까. 세상에 우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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