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人 스토리] 김재만 대명공연예술센터장, 1인3색 매력

1인3색(배우-연출-문화행정)의 구수한 매력남

항상 웃는 얼굴이 브랜드인 영원한 코믹 배우 김재만 씨.

"허~ 허~ 허~~." 너털웃음이 매력적인 김재만(55) 대명공연예술센터장. 언제 만나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 로맨티스트다. 뼛속까지 문화예술(연극) DNA를 타고났기에 20~30대에는 열혈 청년 배우로, 40대에는 연출가이자 문화행정가(달성문화재단 정책실장), 50대에는 극단 대표(공연제작 엑터스토리)이자 대명공연예술센터장(컬러풀대구페스티벌 총감독)으로의 살고 있다.

지나온 시간들은 앞으로의 삶을 강하게 규정한다.

"김재만은 대구 공연예술을 위해 살아라. 더 많은 일을 하고, 대구 연극계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던져라."

그는 이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대명공연거리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극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그는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고 있지만, 유머와 위트만은 결코 잊지 않는다. 1인3색(배우-연출-문화행정)의 매력남 김재만의 과거-현재-미래를 따라가보자.

◆인생 1막, 열혈 청년배우 김재만

젊은 시절 연극에 빠져든 그는 자신의 청춘을 이렇게 회상했다. "인생은 참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것이라고 어른들이 곧잘 말씀하시지만, 20대에는 그런 말이 실감나지 않는 것이 더 큰 진실입니다. 눈 깜빡 할 사이에 50줄에 들어서고 지난 시간을 돌이키자니, 설익은 풋사과 같았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기도 합니다."

청년 김재만은 삶의 활력을 연극에서 찾았다. 1982년 전·후기로 나눠진 대학입학시험 1차에서 쓴 고배를 맛보고서, 후기인 대구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도무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신입생이라는 싱그러움도 잊은 채, 5월 햇살 따가운 오후에 변함없이 막걸리에 취해 교정 한 복판에 있는 벤치에 누워서 입구 쪽을 바라봤다. 지체장애인 학생이 책가방을 힘겹게 들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고, 순간 번개를 맞은 듯 머리카락이 곧두섰다. 그 친구보다 못한 의지력을 가진 자신이 한심했던 것. 다음날 운동화 끈을 동여 메고서 50개가 넘는 동아리 탐방을 시작해, '연극반'이라는 줄리엣을 운명처럼 만났다.

대학 연극반에서 코믹 연기로 나름 이름을 날렸던 그는 극단 '처용'의 창단 멤버가 되고, 전문 연극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또, 대한민국 최고 배우였던 전무송 선생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배우의 꿈을 다져갔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연극계의 배고픈 실상이 눈앞에 다가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그 후 10년 동안 다시 연극판에 '돈 있는 사람(?)'이 되어 나타나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에 레스토랑, 자동차 정비공장, 부동산, 순두부 식당 등을 하며 이 악물고 살았다. '행여 마음이 변할까' 길을 걸을 때 연극 포스터가 붙은 벽이나 전봇대는 절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도돌이표처럼 연극의 길로 되돌아왔다. 대학 연극반 시절 가장 가까운 후배였던 이국희(극단 온누리 대표)의 "형님, 단 한편만 같이 공연합시다"라는 악랄한(?) 꼬드김에 다시 연극판에 돌아왔고, 마치 사막을 횡단하며 죽음을 생각할 만큼의 목마름이 큰 여행자처럼 미친 듯이 무대에 빠져 들어들었다.

이후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피고지고, 피고지고', '동화 세탁소'등 40~50편의 작품을 배우로서 갈증을 채워나갔다.

항상 웃는 얼굴이 브랜드인 영원한 코믹 배우 김재만 씨.

◆인생 2막, 연출가이자 문화행정가로

배우로서의 갈증을 해소한 그는 '피박', '도둑 대 도둑',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 '개장수' 등에서 숨겨왔던 작가이자 연출가로서의 욕망을 분출했다. '불의 혼', '명랑한 미망인', '박쥐' 등 오페라 무대에서도 배우와 조연출, 연출로 무대를 즐겼다. 스테디셀러 연극 '나무꾼의 옷을 훔친 선녀', 중국, 일본 등 200회가 넘는 공연을 지속하고 있는 '개장수', 10년째 이상화 고택 앞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 중인 거리연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은 그의 대표적인 연출 작품이다.

2011년에는 달성문화재단 출범과 함께 정책실장으로 임용되면서 문화행정가로서도 첫 발을 디뎠다. '강정현대 미술제', '100대 피아노 콘서트' 등 대구 대표 브랜드를 창출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달성군 내에 예술 인프라 구축과 생활예술단체 활성화 등 기초 자원개발과 확충 등에 대한 기반조성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2016~18년 컬러풀대구 페스티벌 총감독으로 맡아 거리 퍼레이드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문화행정가는 예술가들의 특별한 재능과 삶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질도 갖추어야 한다"며 "앞으로도 대구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대명공연예술센터장이 된 그는 "대명공연거리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단체들이 밀접해 있는 대구의 예술생산기지"라며 "서울의 대학로와 버금과는 대한민국의 공연산업단지로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향후 '대명공연거리'의 공간 확장을 꿰하고 있다. ▷명덕네거리에서 계대네거리까지 오는 음악중심의 공간 구축 ▷계대네거리에서 대구문화재단의 연습실(보화원 건물)까지의 연극중심의 공간 구축 ▷계대네거리에서 앞산 카페골목으로 향하는 뮤지컬, 인디밴드 중심의 공간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긴 시간을 되짚으며 20대에는 열정만으로 30~40대에는 욕망으로 달려온 것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에는 고장난 기관차처럼 성공만을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놓아야 다른 것이 채워진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갈 때를 잘 해야 행복하다'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과 많은 연극계 선·후배들과 대구의 수많은 예술인들 사이에서 함께 웃고, 우는 존재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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