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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춤추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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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간뒤, 동유는 옷을 모두 벗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살무사란 놈의 손끝이 닿인 곳마다 결벽증 환자나 된듯이 몇번이고 비누칠을 하였다. 목욕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엄숙한 제의를 행하는 듯한 품이었다.그동안 이와 유사한 갈등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제 그만 여기서 자신을 규정해왔던 종래의 관념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실상은살무사의 손이 닿인 곳만이 아니었다. 왜 그런지 부자의 관계이자 사제의 관계였던 허록에 대해서까지도,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해서까지도 아울러 씻어내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더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어떤 관념이든절대절명의 명분이든 더이상 고려하고 싶지가 않았다.언젠가 가보았던 동해의 바다가 생각났다. 하늘과 바다사이에 그어진 단 하나의 선. 이 세상의 사물중에 단 하나의 선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었다. 하늘위의 기상이 어떤 돌연한 변화를 보이든 바다속의생물들이 여하한 생존의 아귀다툼을 벌이든, 가운데 그어진 단 하나의 선은오로지 유유할 뿐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 선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고 왔었다. 양쪽의 가르는 팽팽한 긴장. 고집스러운 태평.

하지만 가령 그 수평선이 생명체라면 저러한 외선으로 자기를 끝끝내 고집할수가 있을까. 주변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 그렇다. 바로 무관심만이 자기를 지킬수 있는 단 하나의 비결이 아닐터인가. 내성화된 심리기저를 지닌 사람일수록 도드라진 한 사건은 자신의 신념을 완강히 지키게 하거나 전혀 정반대의 방향으로 기존의 자아를 허물어버릴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기 마련이다.동유는 창문을 열었다. 노을이 서편 하늘에 수놓여져 있었다. 실바람이 불어왔다. 타월로 훔치지 않아 물이 흐르는 몸을 방바닥에 벌렁 드러뉘였다. 문득참으로 오랜만에 아늑한 밤을 맞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이 그의가슴과 다리위로 무심히 쌓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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