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춤추는 숲-80

부활하는 새 3이튿날부터 허록은 얼마간 그를 놓아두었다. 집에 있는 동안에도 동유 혼자연습실에 가게 하였다. 스스로 돌이키길 기다리는 눈치인지, 저녁에 돌아와서 보면 앉은뱅이 책상에 앉거나 방바닥에 엎드려 새로운 곡들을 만들어 나가는데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유는 잊을 만하면 연습실에서 빠져나와화원에 전화를 걸거나 의혜를 만날 궁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살며시 연습실을 빠져나온다는 것은 전에 맛보지 못하던 짜릿한 기쁨이었다. 의혜도 만날때마다 반갑게 그를 대하였다.

그러면서 가을은 점점 깊어졌다. 가로수 은행잎이 푸른물을 벗겨낸 자리에연노랑 빛깔을 입히기 시작했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면 안개의 차가운 입자들이 서늘히 이마를 때리기도 하였다.

꿈결에 의혜를 떠올리며 바이올린에 사정을 한적도 있어 그 뒤로 그녀를 만난다는 게 여간 겸연쩍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게 곧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오히려 의혜에 대해서 그의 감정이 보통의 연인과는 다른지도 몰랐다.홀로 이불을 껴안고 있거나 허리 잘록한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고 있을 때 의혜를 생각하면 으레 성적공상이 함께 떠올랐지만 막상 만나기만 하면 이상스러우리만큼 까마득히 물러가 버리곤 하였다. 어떤 때는 스스로도 기이하다싶었다. 예를들면 타박타박 화원으로 가, 마침 그녀가 진열대 위에 있는 화초들을 희고 조그마한 손-얼마나 매혹적인가-을 움직여 돌보는 것을 유리창으로들여다볼때면, 정말이지 남성(남성)은 물론 발끝 손가락끝까지 오르가즘에 흡사한 성감(성감)을 느낄 지경인데, 그녀가 안에서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까닥여 불러주면, 그래서 그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아주 정확히,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을 통과하듯이 온몸에 뻗고 있던 성욕들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마는 것이었다.

더 희한한 일도 있었다. 그녀가 둘만이 있는 화원에서 따뜻한 커피를 대접할때면, 커피에 흡사 성감을 자극하는 호르몬이라도 섞은 양 그 까만색 커피가오로지 혈관을 타고 남성을 일으키는 구실을 하였는데, 빈잔을 찻잔에 딱 놓는 순간 어느새 원위치 돼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성적(성적)인 모호스러움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익숙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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