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 이후부터일 것이다. 은유와 헤어져 돌아드는 고샅이 왠지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십 년 동안 한결같이 드나들었던 길. 그래서 이제는 눈을 감아도 어디에 무엇이 박혀 있는지 훤히 꿸 수 있는 그 길이 왜 그리도 낯설게느껴졌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부산에는 나의 고모가 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바다를 본 것도 국민학교 이학년 때 여름 방학을 맞아 부산 고모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막연히 그리던상상의 바다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꿈틀거리는 망막한 바다를 보고 내가 느낀 첫 감정은 경이로움이었다. 드문드문 그림 같은 배들이 떠 있고 끝없이찰싹이는 바다의 너울을 보며 나는 장차 어른이 되면 꼭 부산에서 살겠다고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 아침 그 다짐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종들의따뜻한 환대를 받고 그날 밤 넉넉한 잠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았을 때, 놀랍게도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게 아닌가.나는 놀라 소리쳤다."고모, 이상해. 부산에는 왜 해가 서쪽에서 뜨는거야?" "해가 서쪽에서 뜨다니. 승혜가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구나." 나의 물음에 고모는 천연덕스레 웃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 뜨는 쪽이 동쪽이라고 우겨도 내 머리가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모든 풍경이 낯설어 보였다. 그러니까 전날 내가 철석같이믿었던 방향들은 실은 엉터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 방향 감각을 수정하는 데꼬박 2년이 걸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샅의 낯설음은, 그러나 그때 부산에서 가졌던 그것과는 좀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부산에서 가졌던 그 낯설음이 일시적 당혹감이라면 지금의 그것은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함이었다.마치 시커먼 동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이물스런 느낌. 약간의 미열이라도 있는 날이면 그 정도가 훨씬 심해,나는 숫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내키지 않는다. 그럴 때의 나는 무작정 걷는다.머릿속이 청아해질 때까지아득히 걸으며 케니 G의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를 듣는다. '포에버 인 러브'나 '재스민 플라워'이 가락 속에는 슬픔을 일구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댓글 많은 뉴스
김민웅 "北, 세계정세의 게임 체인저"…주진우 "金, 보수 살릴 게임 체인저"
이진숙 "머리 감을 시간도 없다던 최민희…헤어스타일리스트 뺨칠 실력"
장예찬 "강유정 포르쉐가 장동혁 시골집보다 비쌀 것"
한미 관세 협상 타결…현금 2천억+마스가 1500억달러
美와 말다르다? 대통령실 "팩트시트에 반도체 반영…문서 정리되면 논란 없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