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3)

아마 그 이후부터일 것이다. 은유와 헤어져 돌아드는 고샅이 왠지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다. 십 년 동안 한결같이 드나들었던 길. 그래서 이제는 눈을 감아도 어디에 무엇이 박혀 있는지 훤히 꿸 수 있는 그 길이 왜 그리도 낯설게느껴졌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부산에는 나의 고모가 살고 있었다. 내가 처음 바다를 본 것도 국민학교 이학년 때 여름 방학을 맞아 부산 고모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막연히 그리던상상의 바다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꿈틀거리는 망막한 바다를 보고 내가 느낀 첫 감정은 경이로움이었다. 드문드문 그림 같은 배들이 떠 있고 끝없이찰싹이는 바다의 너울을 보며 나는 장차 어른이 되면 꼭 부산에서 살겠다고다짐했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 아침 그 다짐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종들의따뜻한 환대를 받고 그날 밤 넉넉한 잠에서 깨어나 아침을 맞았을 때, 놀랍게도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게 아닌가.나는 놀라 소리쳤다."고모, 이상해. 부산에는 왜 해가 서쪽에서 뜨는거야?" "해가 서쪽에서 뜨다니. 승혜가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구나." 나의 물음에 고모는 천연덕스레 웃었다. 그러나 아무리 해 뜨는 쪽이 동쪽이라고 우겨도 내 머리가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모든 풍경이 낯설어 보였다. 그러니까 전날 내가 철석같이믿었던 방향들은 실은 엉터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 방향 감각을 수정하는 데꼬박 2년이 걸렸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샅의 낯설음은, 그러나 그때 부산에서 가졌던 그것과는 좀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부산에서 가졌던 그 낯설음이 일시적 당혹감이라면 지금의 그것은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함이었다.마치 시커먼 동굴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이물스런 느낌. 약간의 미열이라도 있는 날이면 그 정도가 훨씬 심해,나는 숫제 걸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내키지 않는다. 그럴 때의 나는 무작정 걷는다.머릿속이 청아해질 때까지아득히 걸으며 케니 G의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를 듣는다. '포에버 인 러브'나 '재스민 플라워'이 가락 속에는 슬픔을 일구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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