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차를 이속(리속)이라고 했던가. 맹탕이 안되도록 적당히 끓인 물에 차를 우려내면 그 서늘한 색과 향이 몸에 스며들어 혼곤한 마음을 눈뜨게 한다.산정의 새벽기운을 가득 머금은 여린 찻잎들이 한잔의 차로 내 몸속에 스며드는 인연을 생각하면 임어당이 그랬듯이 한잔의 차야말로 가히 {신}이라고 할만하다.그러나 신기(신기)와의 접신이 그리 수월한 것만도 아니다. 다포에는 화가이철수의 판화 한폭이 찍혀 있다.푸른색 동그라미 속에 나무 한그루 떠 있는그림인데, 밑에는 {텅비어 있으면 남에게 아름답고 나에게 고요합니다}라고씌어 있다.
오늘 하루도 또 먼지 낀 발동기는 곳곳에서 삐그덕거리며 돌아갈 것이고, 용광로 앞에서는 수천도의 열기를 땀과 월급으로 때우는 노동자들의 바쁜 일손이 폭염을 가르게 될 것이다.어느 고요한 자리가 있어 고즈넉하게 아름다울수 있을까. 차를 마시며 푸른 동그라미속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하늘 가득매연과 서슬퍼런 가스층, 동해바다의 쓰레기 더미와 부엌의 물끓는 소리가가득하다. 푸르른 마음자리 나무 한그루 건져올린 화가의 속뜻을 모를리 없지만, 아득한 허공 어느 자리에 우리의 땀젖은 노동과 각박한 조급증을 비우고청청한 나무 한그루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자신도 모르게 조급증에 전염되어 동동거리며 산다. 길에 나가 보아도 다들 다급한 표정에 쫓기듯이 밀려다니고 무엇을 향해질주하며 무엇을 향해 곤두박질치는지, 차의 행렬에서는 잠시도 못참고 아슬아슬하게 앞지르는 운전자들의 뒤꼭지를 본다.
모든 물은 서두르지 않아도 바다로 흘러들 뿐만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서둘러도 인생은 다 못가고, 다 못 퍼올리고, 다 못 그려낸다. 그러므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극히 사치스러운 차 한잔의 여백일망정 살아서 쉬어가는 자리는 그래서 더욱 서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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