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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타인의 시간(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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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오빠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너덜너덜 보풀이 인 책이 들려 있었다. 나의눈과 마주치자 버릇처럼 콧잔등 위로 안경알을 밀어올리며 작은오빠가 나직이 말했다.[네 신발 보고 알았어. 들어오는 기척도 안 들리더니 언제 왔니?][으응,조금 전에.]

오빠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둔 나는 내가 들어올 때 인사하지 않았던가 하고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누나한테서 전화 왔었어, 좀 늦나봐]

[알았어]

나는 잉크병의 뚜껑을 닫고 일어났다. 그러니 네가 저녁을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작은오빠는 겸손하고 예의 바르기도 하지만 자신의 속내를밝히는데도 이렇듯 늘 우회적이다. 서울대이긴 하지만 그렇게 성적이 우수하던 작은오빠가 지난 입시에 실패한 것도 어쩌면 저런 깜냥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나는 가끔 안타까워질 때가 있었다.

나는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나는 암담한 기분에 젖는다. 우리집 화장실은 안으로 잠글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자살 소동이 있고난뒤, 작은 오빠가 벤치로 그것을 망그러뜨렸다. 열쇠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상황에서 혹시 아버지가 화장실에 들어가 안으로 문을 걸고 또 자살 소동을벌이면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서슴없이 벤치를들이댔었다. 나는 오빠의 전에 없는 과감한 행동을 보면서 우리 집의 보이지않는 출구를 보았다.

나는 아버지가 하루 속히 슬픔의 충격에서 벗어나 주기를 바라지만 갈수록그 희망은 나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요즘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몸은 이승에 있으면서 영혼은 저승에 가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세면대에 물을 가득 받아 손을 씻었다. 언제 묻었던지 손에 묻은 잉크가 물 속에서 미세하게 번져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손을 씻다 말고 그 완만한 운동을 망연자실 지켜보았다. 만일 버지니어 울프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십중팔구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슬픔은 (잉크는) 잉크처럼 (슬픔처럼)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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