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타인의 시간

젖어드는 저녁-13어머니를 안장하고 돌아온 뒤 작은오빠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어머니의 생전에 합격의 영광을 안겨 드리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다.

작은오빠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와 뒷바라지는 유별 나셨다. 어머니는 거의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율학습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작은오빠를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데려왔고, 작은오빠가 자지 않으면 결코 주무시는 법이 없었다.그리고 입시 날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무렵부터는 매일 밤 성당에 나가기도를 드리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재입원하고 퇴원한 뒤부터 집에서 얼마안 떨어진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는데,입시가 가까워 올수록 철야 기도를드리고 새벽녘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부터 심장이 안 좋으신데다그 무렵엔 심내막증을 앓아 치료를 받던 중이어서 우리가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며 그러질 말래도 어머니는 기어이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성미가 무슨 일이든 한번 시작하면 건성으로 하는 법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저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런면에서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큰 귀감이 되어 주셨다.

그렇게 치성을 드렸음에도 결과가 허망하게 끝나자 어머니는 탈기하셔서 며칠간 몸져 누우셨다.그러나 정작 작은오빠 앞에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니라.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구만리 같은 앞날에그런 시련도 있어야 더 큰 나무가 되는 법이다. 다시 시작하거라 작은오빠는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고, 다시 시작하여 내년에는 꼭 합격의 기쁨을안겨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채 그 기쁨도 보시기 전에 서둘러 떠나 버리셨다.

{사후의 생에 관한 소고}라는 책자에 보면 인간의 삶에는 세가지 단계가있다고 했어. 임신에서 출산까지 계속 잠만 자는 단계, 인간들이 지상에서의삶이라고 부르는 반쯤 눈을 뜬 단계, 그리고 마지막은 사후에 완전히 눈을뜨는 단계. 어머니는 우리가 꿋꿋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투명한 눈으로 지켜보고 싶으셨을 거야 마침내 실의에서 벗어나던 날 작은오빠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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