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4년 9월14일 당시 소련은 살아있는 자를 대상으로 처음으로 원자폭탄실험을 감행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13일 러 이타르타스 통신이 전한바에 의하면 이 가공할 실험은 만40년전 이날 미.러 평화유지군 공동연습이 바로 며칠전 진행됐던 오렌부르크주 토츠크특수연병장에서 벌어졌으며, 이때 4만5천명의 군인과 1천명의 시민이 원자폭발의 방사선작용을 직접 체험한 것으로 알리고 있다.
그 장소에는 원자폭발후 깊숙이 패어진 웅덩이하며, 불속에 타버린 금속조각,녹슨탱크등이 흔적으로 남아있으며 당시 목격자들의 회고록에는 {불길속에타고있는 촌락및 나무들, 박살난 기계, 엿덩이처럼 굳어진 모래|}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존된 자료에 따르면 그 핵폭탄실험은 당시 소련국방부 제1차관이었던 게오르기 쥬코프원수가 담당했으며, 이때 목표로부터 단10m차이로 폭탄을 투하한 조종사에게 손수 훈장을 수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폭탄은 지상으로부터 약3백m되는 공중에서 터졌으며 그 폭발력은 35-40킬로톤이었다. 폭발지점을 중심으로 부근에 집중해 있던 군부대들은 폭발의 충격파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연습전에 임했으며, 당시 군인들은 적지않은 도수의방사선 작용을 받았다. 그때 방사선 복사도는 1.5렌트겐으로 아직 이때의 비인간적 비극의 세부는 오늘날까지 시민들에게 공개화되지않고 비밀에 묻혀있었던 것이다.
단지 40년전 당시 이타르타스통신은 [과학연구계획에 따라 요즘 소련에서 원자무기의 한 종류를 실험했다]며 [시험결과 소련학자, 기술자들은 원자침공으로부터 성과있게 방어할 수 있는 고귀한 자료를 얻게 됐다]고 밝힌바 있다.소련학자들은 일찍이 1943년에 핵개발안에 착수했고, 1949년에 이르러 드디어 세미팔라틴스크 부근에서 최초의 원자폭발이 수행됐다. 또 1953년 8월에는북빙양의 한 섬인 노바야 데물랴에서 최초의 수소탄 실험이 실시됐다. 그당시 미.소간에는 핵경쟁이 최고조에 달해있었고 냉전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1963년이 되면서 핵 실험이 지하로 옮겨가게 됐다. 수십년간 {아르쟈마스-16} 핵센터를 맡고 있으며, 모든 핵 폭발을 현장에서 목격해온 당년 90세의 유리 하리톤 박사는 [당시 핵 실험의 장단점을 세부까지 다 고려못했다]고 지적하고 [또 인류멸종의 위험에 대해선 생각조차 않았다]면서 [이때는 오직 미국보다 뒤지지 않는 것만 제1차적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당시 소련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일컫던 쿠르챠코프는 이후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한가지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핵 방사능의 악몽을 반복하게 해선 안된다. 이런 무기를 어찌 인간에게 사용할 수 있는가}라며 미래를 항상 걱정했다는 것.결국 당시 치열했던 미.소 경쟁으로 인해 결국 비인도적인 실험까지 드러난과거의 소행적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은 당시의 상황이 {내가 적국보다 앞서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팽배해 있던 탓으로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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