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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타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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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속에서 나는 줄곧 그 라면의 유혹에 시달렸다.은유와 머리를 맞대고 오들오들한 라면 가락을 후르륵후르륵 삼키며 비발디의 "사계"중 "봄"을 듣는 기분은 상상만으로도 감미로웠다.나는 우리집 근처의 시장 앞에서 내렸다.버스 안에서의 끈질긴 악마의 유혹 탓인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속이 메슥거리고 마알간 침이 괴어 나왔다.나는 껌을사서 한 개를 꺼내 잘근잘근 씹으며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시장은 늘 살아있는 벌레처럼 곰실거리고 아기자기한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가코 끝에 느껴지자 마치 오랜 방황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나는 곧장 내가 자주 가는 과일 가게로 향했다.

언니는 바나나를 무척 좋아했다.한꺼번에 열 개를 먹어치우고도 직성이 안 풀린다는 언니였고, 웬만큼 토라져 있어도 바나나를 들이밀며 살짝 웃으면 시부저기돌아앉는 언니였다.언니는 집에 바나나가 있는 줄 알면 먹고 싶어 안달을 내는 성미였다.어머니께서 내 몫으로 남겨둔 것도 내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어느새언니 뱃속에 들어가 있었다.내가 그것을 알고 파르르 성깔을 돋우면 숫제 입을헤 벌리고 가져가라고 능청을 떨곤 했다.그 짓둥이가 같잖고도 우스워 어떤 때는당조짐하는 선에서 눈감아 주기도 하고 어떤때는 별수 없이 그 값만큼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끔 말씀하시곤 했다. 언니의 몸에 바나나 귀신이 붙었다고.

나는 언니의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푸짐한 양의 바나나를 샀다.내가 바나나를사 들고 들어가면 아마 언니는 몹시 놀랄 것이다.더욱이 그 값의 출처를 알면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른다.나는 그 공상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웠다.총총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넌 나는 우리 동네 고샅으로 접어들었다.배가 헛헛해 자꾸 군침이 돌았지만 언니를 위해 꾹꾹 눌러 참았다.놀이터에는 여전히 조무래기들이 뛰놀고 있었고,여기저기서 원색의 훌라후프가 매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언니,이제 와]

훌라후푸를 돌리던 소영이가 달려와 인사했다. 나는 그에게 바나나 하나를 뚝 떼어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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