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깜장 운동화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덥다. 지독하게 덥다. 너무 더워 피할 생각뿐이다. 피서다 바캉스다 하고떠나 보지만, 막상 집떠나면 고생길이다. 오며가며 길막혀 고생, 백사장마다골짜기마다 사람많아 고생이다. 앞으로 할 고생 미리 생각하면 피서고 뭐고다 집어치우고, 집구석에 돗자리깔고 누워 선풍기 틀어놓고 책읽는 척하다가 잠이나 실컷 잤으면 싶다. 그러나 너무 더워 어디 잠이나마 제대로 자겠는가.국민학교 시절, 그때도 대구는 끔찍하게 더웠다. 얼마나 더웠으면 아스팔트가 다 눅진눅진 녹았겠는가.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 무더위를 기다리는 맛이 있었다. 왜냐하면 눅진눅진 녹은 아스팔트위를 잠깐만 참고 걸으면 운동화 밑창을 아스팔트로 뚜껍게 포장할 수 있었으므로.

그 시절만 하더라도 운동화는 '와싱톤'으로 불리는 귀중품에 속했고 밑창이 닳으면 기워 신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토록 귀한 깜장운동화를 오래 신고 싶어서 잘 녹은 아스팔트를 찾아 중앙통까지 타박타박 걸어갔던 것이 아니겠는가.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와싱톤'생각으로 동무들과 함께 웃으며 걸어가던 열살 안팎의 내모습이 눈에 선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찌들다가도 열살 안팎 그 모습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볼품없는 깜장 운동화지만 얼마나 근사한 희망을 신고 있었던가. 그후 40년,신발이야 훨씬 더 근사해졌지만 희망은 얼마나 볼품 없어졌는가. 뼈속깊이파고드는 차가움을 겪지 않고서 어찌 짙은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겠는가. 또다른 깜장운동화를 만들어 신고 이 여름 끔찍한 더위속으로 그때처럼 땀흘리며 웃으며 걸어가고 싶다.

〈대구시인협회 회장〉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조국을 향해 반박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정경심 기소에 대해 논의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
LG에너지솔루션의 포드와의 대형 전기차 배터리 계약 해지가 이차전지 업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
방송인 유재석은 조세호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하차한 사실을 알리며 아쉬움을 표했으며, 조세호는 조직폭력배와의 친분 의혹으로 두 프로그램...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