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一圓)사상을 살찌우고 널리 보급한 원불교 2대교주 송규가 태어난 원불교성주 성지를 찾아나서는 길은 가을하늘이 싱그럽다. 성주군청에서 김천쪽으로방향을 잡아 10여km를 가다보면 원불교성주성지라 쓰인 팻말을 만난다.
다시 비좁은 콘크리트포장길을 따라 달리기를 2.5km. 길가에 수북하게 자라난칡잎도 가을을 준비하듯 색이 바래고있다. 시골마을이 겹겹이 싸인 산속에 궁궐처럼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상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이름조차도 정겨움이 밴 박실마을.마을 뒷산은 달마산. 장삼을 걸친 달마대가가 앉아있는 것 같은 큰 바위가 정상에 솟아있어 바위 이름도 달마바위이다. 옛적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수백년은 되었음직한 웅장한 팽나무 옆켠에 송규의 생가가 위치하고 있다. 집채를 둘러싼 돌담에는 예스러움이 더하다. 초가집 한채와 기와집2채가 ㄷ자형태로 보기좋게 꾸며져있다. 송규는 1900년 이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초가집 맞은편에 서있는 2m가량의 비석에는 원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이 새겨져있다.
송규의 생가에서 8백여m 떨어진 산기슭에는 인류를 구제하는 큰 인물 이 되겠다는 뜻을 품고 기도를 드리던 거북바위가 놓여있다. 마치 거북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다. 주위에는 밤나무와 탱자나무가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고있다. 송규는 이 거북바위에서 구도를 향한 끝없는 집념을 불태웠다.
송규는 17세때 구도의 길을 걷기위해 전라도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이후 송규는 원불교교조 소태산 박중빈을 만나 득도를 하게되고 마침내 1943년 후계종법사자리에 오른다. 송규는 원불교의 체제를 완비하고 해방후 혼란한 시국속에서전쟁동포구호사업등 많은 사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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