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빙고(石氷庫)는 전기가 실용화되기 전까지 1천5백여년 동안 우리 선조들의 냉장고였다. 선조들은 겨울에 채집한 얼음을 여기에 보관해두고 연중 어느때라도 각종 제향에 필요한 음식제조에 사용하거나 관료 노인 환자 등에게 나누어 주었다.
녹기 쉬운 얼음을 채취하였다가 자연원리를 절묘하게 이용, 사철 내내 사용 가능할 수 있도록 뛰어난 구조물을 축조한 민족은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오랜 경험과 생활의 지혜를 담아내는 선조들의 높은 과학성이 석빙고를 낳았다.
석빙고의 핵심기술은 한여름에도 저온을 유지할 수 있는 환기원리다. 한겨울에 얼음을 보관해두고 겨울의 차가운 공기로 석빙고 외부 및 내부 구조재를 축냉(蓄冷), 가을까지 얼음이 녹지않도록보관하는 하이테크 기술을 발휘한 것이다.
여름에는 잔디가 태양복사열을 차단하고 봉분된 흙이 해동 가열 축열이 되나 석빙고 내부까지 침투하는 기간을 최대한 지연, 말복에도 얼음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겨울에는 영하 10도 내외의대기온까지 냉동되고 한 여름에도 내부는 영하 6 ~7도 내외를 유지한 것.
석빙고는 타원형 고분형태를 띠고있다. 외부를 유선형으로 하여 바람의 영향에 의한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빙실은 지반과 비교하여 절반은 지하에 있고 나머지 절반은 지상에 있는구조다.
특히 차가운 공기의 방열면적을 늘리고 더워진 공기는 정체시켜 실내공기흐름을 지연시키는 공기조절용 에어포켓을 만들었다. 또 천장에는 빙실규모에 따라 홍예보 사이에 공간을 이용하여 환기구멍을 냈다. 환기공의 시설은 봉토바깥까지 구조물이 나오게 하고 그 위에 환기공보다 큰 개석을 얹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겨울에는 냉각 및 건조작용을 하고 여름에는 제습 및 더운 공기를 배출한다. 이 통풍구는 덮개의 탈착이 가능해 볏짚 등의 투입구로도 쓰였고 빙실내의 더운 상승기류가 외부로 쉽게 빨려나가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빙고를 설치하고자 하는 곳에 빙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넓게 장방형의 구덩이를 판다. 바닥은 출입구쪽이 높고 반대쪽이 낮게 경사를 두었다. 빙실의 폭은 대개 4m 내지 6m이고 길이는 다양하다.
빙고 바닥은 흙다짐 또는 장대형 석재를 깔아 놓았는데 바닥이 경사져 빙실안에서 얼음이 녹아발생한 용해수는 바닥중앙이나 가장자리에 배수로를 만들어 밖으로 빠져 나가도록 만들었다. 이용해수는 빙실 안의 열을 빼앗기때문에 생기자마자 배수되도록 설계한 지혜가 특출하다.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이루는 홍예(虹霓)틀의 구조에 있다. 이 형식은홍예틀을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하여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어 빙실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아치구조로 된 빙실은 기둥이 없어 미끄러운 얼음을 운반하는데 편리할 뿐만아니라 일정한 천장높이를 유지하면서 빙실의 공간을 확보하는데 적합한 구조를 하고있다.
또 입구에 바람유도용 벽을 설치, 가을과 겨울의 외기유입을 촉진시켜 석빙고 내부를 건조시키고냉각을 촉진하는 기능을 갖도록 했다.
빙고에 저장하는 얼음의 양은 얼마나 되었을까. 저장얼음은 두께가 12cm 이상이 넘어야만 했다.이 정도의 두께는 되어야 여름을 넘기고 가을까지 보관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기때문이다.적은 빙고의 경우는 수천여정(丁:얼음 한 덩어리)에서부터 10만정 이상을 보관하는 빙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우리 선조들의 얼음보관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의하면지증왕 6년(505년)때 왕이 명령하여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을 두고 얼음을 보관케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태조 5년(1396년)에 동빙고 서빙고를 설치, 예조의 속아문에서 관장하여 얼음을 저장하고 출납하는 일을 맡아 보았는데 1898년 양빙고 제도가 폐지될때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었다. 매년 6월부터 8월초까지 공적이 많았던 퇴직관료에게 3일에 두차례씩, 고급관리에게는 7일에 한번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18세기 영·정조시대들어서는 상업이 발달했던 한강변을 비롯 전국 곳곳에 생선보관용 얼음을 공급하던 사빙고가 많이 생겼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현존하는 빙고는 석빙고로 18세기 영정조대에 축조한 것이 대부분이다. 청도 안동 경주 영산 현풍 창녕 등지에 아직도 남아 있으며 고을 규모가 큰 경주나 해주 등의 빙고는 대부분 30평이 넘었고 규모가 적은 경우는 10평 남짓했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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