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8 새해특집-소백산맥

웅대한 산국(山國)이 흩날리는 눈으로 잠긴다.

겹겹이 쌓인 산 그림자들.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뒤를 잇는, 그래서 영원히 이어질듯 끝없이펼쳐진 산자락. 한나절의 눈발로도 천지를 뒤덮는 가뭇없는 경외감.

청송녹죽 절절한 의기를 가슴에 품은 동학도들의 한(恨)도, 분단의 아픔을 언 발처럼 느끼던 빨치산의 회감(悔感)도, 다랑논을 일구던 농투성이의 소박한 꿈도 모두 보금은채 소백산맥은 있다.곳곳에 수십길 폭포를 드리우고, 어김없이 눈부신 비말(飛沫)을 남기며, 온갖 세상의 만감(萬感)조차 새털같은 가벼움으로 털어버린채 하늘 자락을 이고 그곳에 있다.

쩡쩡한 산울림들. 인간의 외침에 아랑곳이나 했던가.

백두산에서 출발해 지리산까지 뻗어 내린 백두대간(白頭大幹). 낭림과 태백을 내리다 소백이 있다. 낭림과 태백이 등뼈라면 소백은 한반도의 가슴살이다.

강원.경상.전라.충청, 육십령.추풍령.조령.이화령.죽령.팔랑치, 소백산.월악산.덕유산.지리산, 낙동강.금강.섬진강.남한강, 부석사.희방사.법주사.미륵사.쌍계사.화엄사.... 경부.중앙.88고속도로까지 소백의언저리를 탄다.

태백처럼 인간의 발길을 뿌리치지 않는 소박함이 있다. 곳곳에 재를 놓고, 물을 가두고, 나지막한산들로, 간혹 평지까지 언뜻 보이게 한다. 인간의 발길도 기껍다. 수많은 세속을 가습에 품은채 인간속으로 들어온 산줄기다.

태백에서 갈라져 전남 여수반도까지. 인간을 안고 있어서 그런가 3백50㎞를 어어오면서 숱한 영욕을 안고있다. 고구려의 웅기(雄氣)가 있고, 백제의 미려(美麗)에 신라의 단아함이 공존하는 곳. 수탈과 탄압에서 떨쳐 일어난 동학이 있고 반도를 할퀸 전쟁의 상흔이 있다. 그리고 가슴을 열지 못하는 인간의 좁은 소견머리로 해서 소외와 한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소백은 원삼국시대때부터 자연적인 국가 경계를 이뤘고 이를 정복해야만 하나의 나라가 될 수 있었다. 경상도에서의 소백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했고 어떤 경로든 험준한 산들을 넘어야만 좁은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산이 높으면 기질도 다른 법. 같은 산줄기에 땅을 파고 살지만 생활양식과 문화는 달랐다.

이제 소백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땅을 파고, 산을 뚫고 길을 내고. 가슴에 묻은 상처까지 보듬으며 그 언저리를 쓸어야 할 회복의땅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때의 절망과 한스러움, 원망과 서러움도 녹여야 할 우리의 가슴살이 되고 있다.

이제 소백에서 시작한다. 꽁꽁 얼어붙은 산줄기 위로, 언 땅 언 하늘을 짊어지고 쩡쩡 울리는 소백의 고함을 들으려고 한다. 얽히고 설킨 세상사에서 소백이 얘기하지 못한, 아니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그 용틀임을 느끼려 한다.

소백이 풍겨내는 자연의 맛과 그 언저리에 기댄 인간의 맛. 그것을 찾으려고 한다.겹겹이 쌓인 산줄기가 소백의 잔잔한 향내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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