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회복지 총정보 더불어 산다-구미 영남보육원

"전쟁이 난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겁니다. 불과 몇초만에 보육원이 쑥대밭으로 변했어요"구미시 장천면 영남보육원 천명환 원장.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긴박했던 상황을 시간대별로 기록한 '수해일지'가 아직도 그의 주머니 속에 남아 있었다. '16일 오전7시40분 정문앞제방 만수위까지 1.2m' '8시20분 금산주민들 대피했다는 통보 받음. 우리는 어디로 대피할까?' '8시30분 만수위까지 60㎝…하수구 역류 시작'…

수마(水魔)는 오갈데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라고 해서 결코 비켜나가지 않았다. 원생 58명과 교사들이 인근 초등학교로 대피한 시각은 16일 오전 9시50분. 정확히 5분 뒤 인근 제방에서 넘쳐난 물은 영남보육원의 철문과 담장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삽시간에 수심 1m의 '흙탕물 바다'를 만들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대피 직전까지 제방위에올라가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했던 김상호군(17). 원생들의 맏형으로서 누구보다 용감했던 김군도 '정말 아찔한 상황'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물이 완전히 빠진 19일. 이들 앞에는 더 많은 근심이 놓여 있었다. 마당에 쌓인 토사는 치웠지만 아이들이 공들여 가꾼 화단도, 겨울이면 언 손을 녹여줄 연탄창고도 물과 함께 떠내려갔다.

"아이들 숙소 6동의 보일러가 이번 비로 모두 못쓰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걱정할까봐 아직말도 못꺼냈어요" 담담히 한숨을 내쉬는 천 원장 뒤로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 복구작업을 돕고 있었다. 땅위로 흉물스럽게 드러난 하수도관 주변의 돌을 치우고 있는 남학생들. 여학생들은 빨래를 널었다. 재난도 이들에게서 '희망'을 뺏어가지는 못했을까. 오랜만에 삐죽 고개를 내민 햇살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申靑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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