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정보화 사회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정보화 사회가 되면 가사노동이 자동화되고 통신망이 발달하여 여성들의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며 가족 제도 및 관계도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측한다.
산업혁명은 일터와 가정을 분리했으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일터와 가정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여성의 선택 폭을 크게 확대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미래에 대한 도나 헤러웨이(Donna Harraway)의 낙관적 전망은 과격할 정도다. 그녀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정보기술과 생명공학의 접합으로 성차이의 소멸도 가능한 새로운 경계의 세기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 20세기와 함께 '근육의 시대'는 마감되고,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 유연한 사고방식과 부드러운 감수성이 강조되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저해하는 요인이 줄어들며 여성적 가치와 문화가 귀중한 자원이 된다.
전형적인 남성의 직업 영역이던 군대에도 벙커와 탱크가 아닌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갖춘 사무실이 주요 작업공간이 되면서 여성의 진출이 확대될 것이다.
여성적 특성을 필요로 하는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은 남성에 근접하고자 한 세기를 달려온 여성들에게 여성이라는 콤플렉스없이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비약의 계기임에 틀림이 없다.
대규모 관료적 조직의 '관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산업사회의 노동과정은 정보화 사회에서 소규모 수평적 조직의 '룰 중심'으로 변화한다. 이에 따라 여성의 노동과정 적응이 빨라지고 여성의 조직내 약진에 대한 남성의 저항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방해하는 이른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사라짐으로써 여성의 빠른 지위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식정보사회의 특성으로 여성들은 단순한 참여의 증가가 아니라 핵심영역으로의 진출을 성취함으로써 21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여성에게 유리한 사회가 된다는 것이 많은 미래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가 여성에게 무조건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가 기존사회의 구조와 조직, 그리고 사회질서에 토대를 두고 그것과 밀접한 연계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니 만큼 비관적 전망 또한 만만치 않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의 생산, 유통과정은 소수의 지식근로자에 의해 지배된다. 뿐만 아니라 피터 드러커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지식근로자로의 이행은 과거 농민이 산업노동자로 전환한 과정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지식근로자가 되기까지는 오랜 훈련이 소요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학습해야 한다.
그래서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라는 생산수단의 특성상 지식을 소유한 핵심 근로자층과 그렇지 못한 주변 근로자층의 불평등이 심화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기존 사회의 성별 불평등구조가 시정되지 않으면 정보화 사회에서 남녀간 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우려가 크다.
UN보고서 '여성과 정보혁명'에 따르면, 세계 인터넷 이용자의 82%가 남성이며 여성은 컴맹층과 컴약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500대 기술기업의 경우 여성간부는 전체의 5. 3%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여성이 가장 많다고 하는 소프트웨어 부문도 겨우 11. 0%이며 네트워크 통신 분야에서는 1%도 채 안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성별 위계서열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들 부문에서 광범위한 여성의 탈숙련화가 보고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소수 여성이 핵심 근로자층으로 진출해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해도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을 다수여성의 주변화가 급속히 진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을 습득하는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치열해지는 경쟁은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조건의 평등'을 실현하려는 사회적 동력을 약화시킨다.
경쟁력 제고라는 이름하에 여성을 위한 혁신적 제도가 위협받고 있는 세계여성의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경쟁은 복지국가로서의 이상을 시장에 통합시키거나 시장의 지배를 받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위상을 더욱 위태롭게 할 전망이다.
'새로운 기기(器機)'는 단지 문을 열 뿐이고 누가 들어올 것인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정보화는 여성의 지위에 새로운 변동의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실제의 변화는 이러한 조건과 성, 계급, 공동체 등 사회조직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정보화를 남녀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만들려는 21세기 여성의 과제는 20세기에 확보한 제도와 자유가 여성의 집단적 노력의 결과이듯, '여성의 세력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여성 세력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정보화는 디지털 연대(連帶)를 통해 여성운동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정보통신 매체가 가진 분산성과 수평적 특성은 여성의 요구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여성들이 조직되고 동원되는 가상의 커뮤니티(virtual community)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또한 여성의 자발적 소모임들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놀랄만한 속도로 세계적 연대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미 정보화에 힘입은 다양한 국제적 비정부기구들의 활동이 여성을 위시한 인권, 환경, 지뢰 등의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은 분명 여성들의 새로운 의사소통 공간과 전지구적 차원의 여성연대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21세기 여성운동은 가상의 현실(virtual reality)에 근거한 디지털 연대를 어떻게 현실의 불평등과 경쟁의 파괴력에 대항할 수 있도록 조직화하는가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정보화가 여성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고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능력(computer literacy)이 기본 도구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은 정보통신 매체의 값비싼 비용, 과학과 컴퓨터에의 접근을 방해하는 남성 중심의 코드와 문화, 훈련기회의 부족, 그리고 네트워크 활동에 배분할 시간의 부족 등으로 정보화의 소외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보화의 열린 문안으로 다수 여성을 안내하는 일이 21세기 여성 세력화의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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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이화여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고려대 경제학박사 △미국 노동성 '노동통계분석과정'수료 △한국여성개발원 연구본부 연구위원 △(현)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저서
△기혼여성의 노동공급행태분석(95년, 공저)
△여성인구의 특성과 변화(97년, 공저)
△경북여성공무원의 역할 확대 및 지위향상 방안(98년, 공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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