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햇볕정책의 함정

제2차 세계대전후 국제사회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이다

. 그 하나는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갈등과 대립의 관계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의 질서는 오로지 힘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현실주의적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가 대립은 존재하지만 상호간의 경제교류와 협력 등을 통해 갈등을 줄이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보는 상호의존론적 시각이다.

전자는 후자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너무 이상적으로만 보고 있다고 비판하는 반면 후자는 전자가 국제사회의 도덕이나 정의를 무시한채 너무 힘의 논리만 앞세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외정책의 수립에서 이 두가지 시각을 절충해 오고 있다. 왜냐하면 힘에 기반한 채찍정책과 경제적 지원 등의 당근정책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이 탈냉전적 국제질서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관계에서도 이런 정책이 추구되고 있다. 미국은 금창리 핵시설의 사찰허가 조건으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 주겠지만, 핵의혹이 완전 해소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군사적 압박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북한도 대미.일.한국 관계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이라는 일종의 채찍정책과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으려는 당근정책을 동시에 쓰고 있다는 점에서 대외정책의 기조는 미국과 비슷하다.

그러면 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말해 현실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채찍은 없고, 이상적 상호의존론자들이 주장하는 당근만 있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게 경제적 지원 등 당근정책만 계속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고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한관계도 개선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개혁과 개방의 길로 들어서서 미.일.남한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돼 김정일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북한은 적어도 남한과의 관계는 원점으로 돌릴 가능성도 크다.

그동안 요란했던 남북한 경협이 나진.선봉의 한국기업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사실상 중단상태에 있다는 언론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 북한이 우리와의 관계를 지금 당장 단절하더라도 그동안 우리가 투자한 대가는 커녕 우리정부가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채찍이 거의 없다. 여기에 현정부 햇볕정책의 함정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정부도 국제사회의 다른 국가들처럼 대북관계에서 당근과 채찍정책을 동시에 구사하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우리도 북한만큼의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배수진이라도 쳐야 한다.

사실 우리는 개발중이던 핵무기도 포기해 버렸지만 북한은 한편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면서도 비밀리에 핵개발을 계속해 왔다. 그 북한에 미국.일본.한국 등이 크게 매달려 있다.

차제에 우리도 너무 미국의 안보우산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전쟁용 핵무기 개발은 아니더라도 일본처럼 산업현장에 평화적으로 사용할 핵에너지 기술과 북한수준의 미사일 개발을 자체적으로 해 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일본은 북한의 괴선박 두 척의 영해침범 사건을 빌미로 군사대국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정도의 채찍용 배수진이라도 쳐야 북한이 좀 더 핵과 미사일개발에 있어 현실적 입장을 취할 것이고, 한.미.일 공조체제도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현정부의 햇볕정책도 현실성있는 외교정책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책추진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채찍없는 당근만 계속 주는 포용정책은 현실주의자들의 비판처럼 우리 외교가 너무 북한의 실상을 무시한 채 이상적 사고에만 치우쳤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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