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차관급 회담 '신경전'

남측이 차관급회담 결렬과 대표단의 철수선언을 한 뒤 북측의 전격 제의로 성사된 3일의 양측 수석대표 단독 접촉은 양측에 어떤의미를 주는 것인가.

결렬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수순의 일환인지 아니면 최소한 다음 회담 일정 정도는 합의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내자는 것인지 예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차관급회담을 둘러싼 남북 양측의 신경전과 소모전이 어느 수준인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하는 양측의 방침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날 오후 3시30분(이하 현지시간)께 양영식(梁榮植) 남측수석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대한 북측의 내부준비가 미흡하다는 판단 아래 회담결렬과 대표단 철수 결정을 발표했다.

또 양 수석대표는 이날 오전까지 다음 회의 일정 협의를 위해 북측이 전화연락을 주기로 한 약속과 달리 전화통보가 없었다는 점도 철수 배경의 하나로 설명했다.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양 수석대표가 지하 1층 펑션 룸으로 내려간 시간에, 다시 말해 오후 2시27분께 북측은 전화연락으로 지난 1일 회담에서 제기한 3개사항(서해사건에 대한 사죄와 재발 담보, 비료수송계획 조속 통보, 황장엽씨 인터뷰기사에 대한 남측의 책임적 대답)에 대한 답변이 준비가 돼 있느냐는 기존 입장을 되물어 왔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이날 오후 7시께 북한대표인 권 민(權 珉)아.태평화위 참사가 남측에 해 온 전화연락이다.

권 아.태평화위 참사는 "내일(3일) 오전 양측 수석대표 단독접촉을 갖자"며 "대답을 이날 중으로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에 대해 남측은 이날 오후 10시께 전화로 "북측이 이산가족문제 해결 방안을 갖고 오는 것으로 알고 3일 오전 9시 양측 수석대표 접촉을 갖자"고 수정제의해 결국 수석대표 비공개 단독 접촉이 성사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석연찮은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남측 대표단의 철수 방침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남측 관계자들은 "아직 3일 대표단 철수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며 "북측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종전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대로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측은 이날 수석대표 기자회견에서 "다음 연락은 판문점 직통전화로 해 주기바란다"고 만천하에 다 알렸다. 그런 다음에 베이징 현지의 전화접촉을 허용한 까닭에 대해 남측 대표단은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겨우 한다는 이야기는 "남북 차관급회담을 그래도 계속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 이산가족문제 해결 방안을 북측이 가져 올지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단 북측이 가져오는 것으로 알고 수석대표 접촉을 수락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북측 태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측 대표단이 철수한다는 마지노선을 밝히자 북측이 겨우 대응해 나온 것은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차치하고라도 남북 쌍방의 이성적인 화해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남측 또한 마찬가지지만 북측의 이같은 제의는 결렬 책임을 상대에게 미루기 위한 떠넘기기 작전일 수도 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비료 10만t을 더 지원받기 위해 북측으로선 최소한 다음 회의일정 정도는 잡아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더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술적으로 비료지원의 데드라인인 이달 중순까지는 남북 차관급회담이라는 대화 채널을 그대로 갖고 가는 것이 북측으로선 실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의 이같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3일 양측 수석대표 접촉은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 회담 결렬 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을 뿐아니라 별다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각각의 대내 여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을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겨우 다음 회의 날짜 하나를 확정짓기 위해 이런 식으로 소모전을 펼치는 남북의 회담꾼들은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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