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시대에 비바람을 막고 맹수를 피하기 위하여 적절한 피난처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 건축이 선진 외국에서는 문화예술로서 자리를 잡은지 오래된 일이며, 유명한 건축물이 있는 지역이 관광명소가 되어 입장료를 내고 건축물에 출입하는 데 비해 우리의 실정은 이와는 너무나 다르다.
우리네 조상들이 만든 석굴암, 불국사 또는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같이 적지않은 전통 건축물은 문화유산으로 잘 보존되고 있는데도 현대 건축물에서는 그러하지 못하다.
70, 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의 영향을 받아 건축이 기술적인 면과 건설로서 인식되어지고 한편으로는 재산 가치로 여겨져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부동산의 투기대상으로 전락한 지경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흔히 건축물을 '인간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허허벌판에 분양안내 깃발 몇 개 꽂아 놓고 '∼지역에서 제일 높은 집'이라고 선전하면서 고층 아파트를 다투어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좌청룡 우백호라 하여 나지막한 산 아래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시골마을. 조상때부터 내려 오던 마을의 정경들이 한순간에 파괴돼 모처럼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어릴 적 추억을 되찾기가 도무지 어려운 형편이다. 땅 값이 그리 높지 않은 읍면 지역에도 15~20층 높이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우뚝우뚝 세워져 자연 경관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들을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광복 50년째 되던 해, 지난날 일제가 한국 명산의 정기를 빼앗는다고 박아둔 쇠말뚝을 다시 뽑아내는 광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거대한 콘크리트 말뚝을 이 아름다운 금수강산 온 국토에다 세울 것인지.
도심지로 눈을 돌려 보자. 도심에 있는 학교들은 대부분 외곽지 녹지 지역에 산을 깎아 이전하는 추세이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이내 회색의 콘크리트숲이 들어선다. 재건축·재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도심 주거지역 군데군데 괴물처럼 세워지는 획일적인 모습의 고층 아파트며, 신천변의 아파트군이 도심의 스카이라인(skyline)마저 파괴하고 있다.
이제 IMF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건축이 우리 삶의 터전으로, 문화의 바탕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건축가·건축주·도시행정가 등 모두가 한번쯤 되돌아 볼 시기인 것 같다.
건축이 2차원적인 회화나 3차원적인 조각, 음악 등 순수예술과 다른 점은 그 안에 공간과 시간과 생명체가 있으며, 회화나 조각, 음악을 간직한다는 것이다. 사용에 편리하고, 구조적으로 안전하며, 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축이야말로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50년이고 100년후에도 강한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실무현장에서 가끔 느끼는 일이지만 건축설계가 공장에서 균일하게 만들어지는 제품인양 며칠만에, 또는 몇 주일만에 빨리 설계해 달라는 주문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싼 설계비를 지불하는 것이 이득을 보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아무렇게나 어지럽게 들어선 건물들, 도시미관을 고려치 않은 획일적인 외관, 망가진 스카이라인…. 건축에 있어 무작정 '시간'과 '돈'을 아낀 결과가 바로 우리들의 이 매력없는 도시가 아닐까? 무엇을 아껴야 하고, 무엇이 소중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 왔는지, 또 얼마나 현실이 안타까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김무권(건축가·(주)현대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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