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추기경의 경고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오랜만에 정치권에 따끔한 충고를 했다.

김추기경은 며칠 전 "요즘 정당들은 오로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신당 창당 또는 당의 결집에 전력을 쏟고 있다. 그 정신과 노력, 힘이 나라를 위한 것인지 당을 위한 것인지 불투명하다. 그런 자세로 새시대를 맞을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당 창당이니 제2창당이니 하며 새 집 짓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치권 모두를 향한 질책이었다. 요즘 정치권의 속을 들여다 보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 진다. ◈오로지 총선에만 관심

이미 발기인대회까지 치르고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들어간 국민회의의 경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창당 취지문이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제시한 모토 어디에도 새로운 것이 없다. 발기인이라고 모인 사람들의 면면과 선정 과정도 찜찜하다.

"21세기 한차원 높은 정치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전문성과 도덕성, 개혁성, 참신성을 두루 갖춘 분들"이라는 자평을 무색케 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여론의 지탄을 한 몸에 받은 두 의원이 포함됐고 그것이 당 지도부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충성심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어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공동대표인 장영신(張英信)애경그룹회장이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의 부회장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포장용 인선 바람직한가

특히 '포장용'으로 끼워 넣은 듯한 몇몇 인선은 분명 사려깊지 못한 처사다.

세계적인 음악가 정명훈(鄭明勳)씨,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 김운용(金雲龍)IOC위원의 경우 자기 분야에서 더 큰 역할을 하도록 해 주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또 학자나 기업인도 마찬가지다. 구색 갖추기와 일시적인 인기를 위해 이들을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과연 바람직한가는 곱씹어 볼 대목이다.

한나라당의 제2창당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곱지 않기로는 국민회의 못잖다.당의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점이 무엇이냐는 비판이 비등해지자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지난 8월초 제2창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나라당은 '제2창당의 실체가 있는가'라는 의구심만 더했을 뿐이다. 당내에서 조차 냉소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제2창당 선언이 여당의 신당 창당을 의식한 '부화뇌동(附和雷同)'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총재의 리더십 결여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보스 정치, 패거리 정치를 청산 대상으로 지목하면서도 구습을 답습하고 있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포용력 부족,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또 제2창당 선언 후 한나라당이 인물을 구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노력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인재가 모인다는 얘기는 더더욱 들리지 않는다.

◈21세기 비전 제시할 수 있어야

또 지난 1년간 한나라당은 대여(對與)발목잡기에만 매달려 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총재는 '존립을 위협받는 위기상황이었다'지만 국민들에게 건전한 대안세력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키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야의 창당작업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내년 총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한 개개인의 욕심과 당리당략이 앞서는 창당은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 볼때 실패의 되풀이가 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겉포장만 바꾸는 창당이 아닌 21세기 국가경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겠다는 각오로 터를 닦고 기둥을 세워보라. 그러면 민심은 저절로 되돌아 오지 않겠는가.

鄭澤壽.정치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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