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현장-문인화가 이원동씨 7월 개인전 준비

밤 9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일을 접었을 시각, 그도 뒤늦게 서화원을 정리한다. 제자들 대부분이 돌아간 이 시각부터 그는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간다.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의 세계에 빠져든다. 창 너머로 차가 달리는 소리, 행인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두 시간여가 지난 밤 11시. 거리의 소음도 잦아들고 차츰 적막이 다가온다. 그제서야 그는 두 눈을 뜨고 천천히 한지앞으로 다가선다. 마음속에 떠오른 영감에 따라 붓을 쥐어들고 먹을 듬뿍 찍어 심상(心象)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꺼칠한 한지면이 붓끝으로 전해지고 붓을 쥔 손의 울림에 따라 수묵의 농담이 느껴진다. 붓질이 거듭되면서 세상은 점점 더 고요해지고 새벽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완전한 침묵이 다가온다. 새벽3시. 하루가 열리는 시각이지만 고요는 최고조에 달한다. 한지 위를 미끄러지는 붓이 이따금 사각거릴 뿐 그는 숨조차 멎은 듯 작품에 몰두한다. 새벽4시. 그는 붓을 접고 짧은 잠을 청하러 근처의 집으로 돌아간다.

대한민국 서예대전 대상 수상작가(1998)이며 매일서예 동우회장을 지낸 문인화가 이원동(41)씨. 그는 새벽에 작품활동을 한다. 아침 무렵 4시간 정도 잠을 잔 뒤 오전10시 서화원으로 다시 나가 낮에는 주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예, 문인화를 지도하거나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청산향림갤러리 기획 일을 맡아보고 있다. 최근에는 두달여 앞으로 다가온 개인전의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새벽에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전시회가 다가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벌써 20년 넘게 이같은 생활리듬을 유지해 오고 있다. 침묵이 가져다주는 영감이 작품을 더 만족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7월 중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은 다시 한 번 눈길을 모을 듯 하다. 지난 95년 개인전으로는 매우 드물게 대구문예회관의 5개 전시실을 이용한 데 이어 이번에도 5개 전시실을 사용, 대규모 전시회를 갖는다. 전시회가 덜 열리는 7월을 전시 시기로 잡은 대신 전시공간을 더 달라고 문예회관측에 요청했으나 문예회관측이 난색을 표해 물러서고 말았다.

"작품 구상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립니다. 지난 97년 개인전을 가진 뒤 3년간 틈틈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작품을 제작, 거의 완성했고 이제 대작 2점을 제작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이번 전시회에 24폭(폭 12m×세로 2m) 병풍 2점, 6~12폭 병풍 20점, 평면 작품 50점을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회는 그의 작품세계가 변화를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전의 작품이 형상이 있고 채색이 가해진 데 비해 이번 전시회 작품은 자신의 경험과 느낌, 영감을 수묵의 짙고 옅음, 가늘고 굵음을 통해 추상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가 제작중인 24폭 병풍 작품을 예로 들면 이렇다. 그는 매화를 통해 '비상하는 봄'을 표현하기 위해 지난 2월, 여러 산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잿빛 가지속에 피어난 연분홍 꽃을 보기 위해서다. 칙칙한 색 일색에서 한 점 드러난 맑은 매화는 겨울속의 봄, 암울한 현실속의 희망이라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는 새벽녘 맑은 정신속으로 영감을 틔워올리며 이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미 완성한 작품중에는 음악을 영감으로 한 작품도 있다. 국악인 원광현씨의 대금산조를 바탕으로 그 가락을 떠올리며 붓을 놀린 이 작품은 유장한 대금 가락이 배어있는 듯 하다. 그의 이번 전시회 주제는 '유(遊)'. 일반적 뜻으로 노는 게 아니라 정신을 노닐게 하고 붓을 노닐게 한다는 의미다.

"좀 더 성숙해지고 싶습니다. 이전까지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평가를 받고 더 정진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20여개에 이르던 각종 단체활동을 접었다. 그가 작품외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서화원생 지도와 갤러리 기획업무. 올초 개관한 청산향림갤러리는 그의 의도에 따라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상업성을 배제하지는 않되 화랑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다.- 金知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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