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곽홍란(아동문학가)

아버지!다부원에는 풀꽃이 느낌표로 핍니다. 초복보다 더 푸르른 청춘을 내어 걸고 산허리 솟은 혈맥을 골몰이 넘는 저 풀꽃들을 보면서 그리운 당신이름 불러봅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한국전쟁 당시 최후의 방어선이자 최대의 격전지였던 이 곳을 찾아 눈시울 붉히시던 당신이었습니다. 한마리 풀벌레조차 못 죽이던 전우들이 제주에서 평양으로 뜻 다른 이 찾아 총부리 겨누다 전사자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명각비를 쓰다듬으며 애통해 하셨지요. 그러던 당신마저 지금은 가고 아니 계십니다. 다만 참전용사로 새겨진 당신 이름 석자를 오늘은 내 가슴에만 뜨겁게 새깁니다.아버지!

다부원에는 뭇별들도 꽃이 됩니다. 이름을 가진 장미나 백일홍 목련꽃보다 제 이름 알 수 없는 꽃이 여기선 더욱 곱습니다. 주리고 비틀어진 낙강의 허리채 안고 끝끝내 깍지 끼어 목숨과 바꾼 사람들, 반백년의 세월을 땅 속에 묻혀 이름마저 잃어버린 그들도 꽃으로 피겠지요. 사랑니도 나지 않은 열일곱 꽃다운 젊은 학도병들의 넋이 어쩌면 저 연분홍 맑은 배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다부원에는 풀꽃들이 꿈을 꿉니다. 적병의 따발총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져도 편히 눕지 못한채 오랜 세월 기다려온 그들의 꿈입니다. 이름모를 어느 병사의 만년필에 '푸른 소나무처럼 곧게 살자' 새겨진 '청송정'이라는 글씨처럼 그들은 곧은 나무 한그루로 태어나 마주보고 웃고 있겠지요. 밤이면 흩어진 전우들의 깊은 잠 깨워 생채기진 군복일랑 벗어 색동으로 갈아입고 고향 가는 꿈도 꾸겠지요.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께서도 차마 못다 푼 한은 두견에게 맡겨두고 피어린 능선을 넘고 넘어 그리운 이름들과 백두대간 오고가며 꽃으로 피겠지요. 저 환한 웃음으로 물들이는 님들의 아름다운 넋에 오늘은, 제가 잔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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