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화섬단지인 구미 공단. 법정관리를 신청한 대하합섬은 2개월치 18억여원의 전기료를 못내 3일 오전11시부터 단전 조치됐다. 동국합섬은 워크아웃 상태고 새한도레이와 금강화섬은 각각 워크아웃과 화의를 신청해놓고 있다. 여기다 최대 원사메이커인 코오롱은 노조파업과 이에 대응한 회사측의 직장폐쇄 통보로 갈등의 끝이 안보인다.
원사업체들의 총체적 위기. 재고는 쌓이는데 판로는 막혀 있고 노사갈등은 깊어지고. 여기다 원가는 날이 갈수록 상승한다.
구미에서 중간 정도 규모인 한 업체. 그나마 자금사정이 다른 업체들보다는 여유가 있는 탓에 재고를 덤핑으로 처리하지 않고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다.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오너의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업체 실무자는 "다른 업체들도 재고가 예년의 50~100%씩 늘어나 솔직히 너무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1, 2년안에 좋아진다는 전망이 없어서다.
이렇게 된 일차적 원인은 과도한 설비 증설 탓. 좀 된다 싶으면 모두 뛰어드는 우리 섬유업계의 고질병은 원사 생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역 직물업체는 앞다퉈 화섬업으로 진출하고 기존 대기업은 그들대로 증설에 나섰다.
국내 생산량은 지난 90년 1천400여t(폴리에스테르 원사기준)에서 지난해말에는 4천900여t으로 급증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인도네시아산이 쏟아지고 있으니 버텨 내기가 어렵다. 가격은 파운드당 65센트가 손익분기점인데 겨우 50센트대.
원사업계의 불안은 고스란히 직물업계로 연결된다. 원사메이커들은 대부분 직물공장을 갖고 있는데다 임직을 많이 하기 때문. 대하합섬의 임직을 하는 ㅅ사는 "3개월치 임직료 4천만원을 아직 못받고 있다"며 "우리 같은 업체들이 수십개에 달한다"고 말했다.
제품의 수준도 크게 떨어진다. 대구경북견직물조합 장해준 상무는 "원사업체에서 신소재 개발 및 고급화 된 제품을 공급해야 좋은 원단이 나오는데 원사공장이 제대로 안돌아가면 이게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원사업체들은 재고처리를 위해 덤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자금력을 갖춘 직물업체는 싼 값으로 원재료를 사들여 그만큼 낮은 가격에 판매가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영세업체들은 경쟁력을 갖출 수 없게 되고 시장질서는 갈수록 교란된다.
여기다 직물업체들도 엄청난 재고 누적과 수출감소로 허덕이고 있다. 특히 수출물량이 많은 중견업체들은 자금이 돌지 않아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업체를 살릴 대책이 없다는 점. 섬유단체 관계자는 "희망만 있다면 정부에 떼를 써 보겠는데 솔직히 무엇을 해야 할 지 난감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대구경북지회가 관내 440개 업체를 대상으로 5월중 가동률을 조사한 결과 전월에 비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창득 지회장은 "섬유업 가동 부진이 평균 가동률 하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ㅅ무역 회장은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살아남는 업체가 없을 것 같다"며 "정부나 대구시는 이것이 구조조정이라고 하는데 구조조정이 경쟁력 강화로 나가야지 숫자만 줄인다고 될 일이냐"고 한탄했다.
정부나 지자체, 관련기관.단체의 무대책 속에서 넘어지는 업체가 속출하고 위기감이 팽배해지는 가운데 대구.경북은 섬유산지로서의 위상이 추락의 길에 들어서버린 것이다.
崔正岩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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