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새내기 토목기사 오주영씨

"레미콘이 너무 질어 보여요. 슬럼프 검사를 해봐야겠어요. 당장 레미콘 멈춰요!"굉음과 함께 믹스트럭(레미콘차)에서 펌프카의 호퍼로 쏟아지는 레미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주영(25·삼성물산 건설부문) 기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고함치는 모습이 얌전해 보이는 외모와 딴판이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죠? 콘크리트 점도가 너무 약해 보인다는 말입니다" 사뭇 엄숙한 낯빛으로 고함 치던 것과 달리 금세 다소곳한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오 기사가 이의를 제기한 뒤 슬럼프 검사가 실시됐고, 한 차 가득 실린 레미콘은 몽땅 불량으로 판명, 폐기 처분됐다.

"점도가 기준에 어긋나거나 생산 후 한 시간 반이 지난 레미콘은 쓸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되돌려진 레미콘은 생산 공장으로 반품돼 폐기됩니다"

지난 연초 대학을 졸업한 직후부터 반월당 지하공간 개발 현장에 투입된 그녀는 아직 새내기 토목기사. 하지만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목청을 높이는 그녀는 거친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서 제 몫을 해내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맡겨진 일은 레미콘의 점도와 염분·온도를 체크하는 일. 하루에 한번씩 지하 현장으로 내려가 완성된 콘크리트 기둥의 균열을 검사하는 일도 그녀의 몫이다. 밤샘 작업은 물론이고 소주·맥주 등 술도 남자 노동자들과 어울릴 만큼은 마신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유럽의 장난감 같은 집을 짓고 싶어서 무작정 토목기사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영남대 토목과에 입학하고는 100명의 동기생 중 여학생은 고작 5명밖에 안되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야 했다. 남학생들과 함께 하는 남자들의 일은 한마디로 고통의 연속이기도 했다. "여고 때까지는 오직 예쁘고 깨끗한 것만 보며 자랐어요. 막상 남자들 틈에 끼이고 보니 만사가 거칠고 힘들더군요. 처음엔 이런 세상이 다 있을까 싶었어요"

그랬지만, 철제빔이 군데군데 솟은 지하 4층의 어두컴컴 습기 찬 건설현장을 걸을 때는 그 학창시절 조차 마치 동화 같이 되새겨진다고 했다.

여름 햇살이 화살처럼 내려 꽂히는 건설 현장을 뛰어 다녀야 하지만, 토목기사 일이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오 기사는 확신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책임감 있는 여성이라면 대형 트럭과 중기가 열을 뿜어대는 현장도 끄떡없다. 자기 손으로 예쁜 집 짓고 딸만 넷인 여섯 식구들이 모여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고스란히 한채 강철로 만든 복공판 위로 달려가고 있었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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