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정의가 강물처럼

1950년 6.25전쟁이 터지기 몇달전 대한민국 국군이 된 시골청년이 있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그는 흔쾌히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 혹독한 훈련과 기합, 지독한 배고픔에 허덕이며 묵묵히 복무했다.

제대하면 농사꾼으로 돌아가리라는 소박한 꿈을 가진 시골청년에게 전쟁은 어느날 갑자기 아비지옥처럼 쏟아져 내렸다.

처절을 극한 밤낮없는 후퇴와 진격의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수한 젊은이들이 숨져갔고 그 시골 청년도 사선을 넘나들다 혹한의 산악전투에서 뜨거운 피를 쏟으며 장렬히 산화했다. 나라지키기, 단지 그것 때문에 초개와 같이 스러져간 것이다.그의 고향집에는 입대 한달 전에 결혼한 꽃같은 새색시가 있었다. 그리고 새색시의 몸에는 그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그후 50년, 새색시는 유복자 하나만을 끌어안고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인고의 세월을 살았다. 아들은 "애비없는 ××"이라는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 꿋꿋하게 자라났고, 그 새색시는 지난달 7순의 할머니가 되어 보훈대상을 받았다.

시상식이 열린 6월14일은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6.15선언이 무르익고 있었다. 50년만에 처음 만난 동창생처럼 쌍방 대표들의 연회는 건배와 원샷과 웃음이 넘쳐났다. 그 누구도 6.25와는 무관해 보였다.

양측의 통일방안이 닮은 면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산가족과 비전향 장기수를 동일선상에서 처리하기로 하는 내용을 포함한 6.15선언이 발표됐다.

김 대통령 일행의 귀경후 언론은 북한 송환이 결정된 비전향 장기수라는 사람들의 '그동안의 억울함과 의연함'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의지의 한국인' 처럼 대우받는 사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6.15선언 수준의 조명도 받지 못했다. 또 간첩으로 넘어왔다가 전향한 사람, 자수한 사람, 그리고 탈북자들이 받았을 혼돈과 불안한 심정에 대한 배려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북쪽 이산가족 명단이 오자 또 다시 한반도 남쪽은 흥분했다. 대부분 월북자이면서 그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소개되고 그들의 남쪽 가족들이 겪은 설움과 하소연이 지면을 뒤덮었다. 그 사이 월남자 가족은 물론이고 국군포로, 납북자 가족들의 원통함은 어디서도 위로 받지 못했다.

인도적 대의에 충실하려면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 아픔에 대한 균형된 시각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선악의 분별없이 이데올로기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모든 것을 희석시키는 야만적 독선은 배제돼야 한다.

인생 황혼녘에 보훈상을, 그것도 벌써 오래전에 일반인의 관심과 박수가 거의 사라져버린 보훈상을 받아가는 칠순 할머니에게 인권은 어울리지 않는 말인가.

6.15의 화려한 개막 잔치는 끝났다. 이벤트적 거품을 걷어내고 남북간 평화와 신뢰를 회복하는 실용적 방향으로 대화와 교류를 진행시켜나가야 한다. 이번 '6.15선언'은 내용보다는 후속조치 이행에서 '7.4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이후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 조심스런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정부와 사회지도층은 이러한 국가적 중요시기일수록 국민을 귀히 여기고 국가유공자를 명예롭게 여기는 분위기를 발전시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진보니 통일이니 하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인권유린적 폄훼를 당하는 류의 지적테러리즘은 배척돼야 한다. 국난에 단호히 분기하는 애국심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존앙돼야 하고 그런 기풍은 통일이후에도 유효해야 한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김대통령의 신념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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