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2일 공개한 북측의 생사확인 의뢰자 100명의 직업과 신분은 지난 8.15 이산가족 상봉때와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8.15 때 유명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 이번 의뢰자들은 노동자, 협동농장원 등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월 이산가족 상봉 당시 북측 예비 명단 200명에는 헤어질 당시 학생이 8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노동자 47명, 농민 42명 등으로 상당수 배우, 학자 등 이름난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북측이 지난 이산가족 상봉때와 같이 의뢰자 선정과정에서 신분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경우에는 지난 8.15때와 같이 직접 상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와 주소확인후 서신만을 교환한다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분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같은 관측은 헤어질 당시 이들의 직업이 대부분 농업, 노동자들이 많은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뢰자 100명중 헤어질 당시 직업은 농업 45명, 학생 22명, 노동자 18명, 사무원 5명, 교사 3명, 설계원 등 기타 7명등으로 나타났다.
또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20명에 불과하고 황해남도 16명, 평안남도 15명, 황해북도. 평안북도. 강원도가 각각 10명, 함경남도 9명, 남포시.개성시 각각 5명 등 대부분이 평양외곽 거주자들이다.
그러나 유명인사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출신 백영철 김책공대 강좌장(77), 인민군 소장 김학만씨(69), 평양체육대교수 김홍정씨(66), 헤어질 당시 서울법대생이었던 이일걸씨(71) 등이 포함돼 있다.
북측 생사확인 의뢰자는 남자 85명, 여자 15명이며 처자식등 직계가족을 찾는 사람은 7명이며 형제자매를 찾는 사람이 93명이다. 출신지 별로는 서울 15명, 경북 15명, 경기 13명, 강원 5명, 충북 14명, 충남 10명, 전남 14명, 전북 7명, 경남 6명, 제주 1명 등으로 대부분 월북자로 채워졌다.
李相坤기자 leesk@imaeil.com
#"북한에 살고 있는 언니를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요"
북한에 살고 있는 언니 이동숙(80.평남 평성시 덕성동)씨가 여동생들의 생사확인을 요청해 왔다는 소식을 접한 첫째 여동생 이동현(73.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전 서라벌꽃예술협회 이사장)씨는 가끔 중국에 사는 외사촌으로부터 언니의 소식을 들어 왔으나 이번에 확실히 살아계신 것이 확인 돼 기쁘다며 하루빨리 만날 수 있기를 고대했다.
경북여고와 경성 사범을 나와 북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언니를 마지막 본 것은 6.25를 한달 여 앞둔 지난 50년 5월께. 결혼 후 서울에서 살고 있던 동현씨는 가끔 서울과 고향(대구)을 찾아와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하던 언니의 젊을 적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시절 여고생이었던 언니가 그저 엄마와도 같았다며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 지 몹시 궁금해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큰 언니를 더할 수 없이 그리워 했다고 말하는 이씨는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무엇보다 벌써 팔순에 접어든 언니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는 이씨는 "얼른 네자매가 서로 만나 못다한 정을 나누고 싶다"는 말로 기쁨을 대신했다.
# "형, 서울에서 공부해서 고등학교 꼭 갈께요"
김제민(71·북구 대현동)씨는 6·25사변때 잃어버린 동생 김제렬(63·평양)씨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50년전 서울로 공부하러 간다며 기차역에서 동생을 배웅하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설움이 북받혔다.
김씨일가는 1950년 3월 서울 둘째 형님 집에서 혜화국민학교에 다니던 제렬씨(당시 13)가 인민군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전쟁통이라 찾을 수도 없어 고향에서 4년동안 이사도 가지않고 기다렸다.
제민씨는 "중학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아 서울로 보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줄은 몰랐습니다"라며 동생의 이름을 되뇌었다.
경북 영천군 자양면이 고향인 김씨일가.
모두 8남매인 김씨 형제는 제후(77,일본 시즈오카),재복(74,서울), 제민(71,대구 북 구 대현동),제노(여,65,경남 창녕), 성모(여,55,서울),제목(48,경북 문경)씨로 이번에 가족상봉을 신청한 제렬씨는 넷째다.
"지금봐도 한눈에 알아볼수 있습니다"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김씨의 시선은 한 동안 허공을 맴돌았다.
전쟁동안 둘째 형인 제복씨는 인민군에 끌려가 거제도와 영천에서 3년동안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다 풀려났고 제민씨는 1950년 7월 국군에 입대해 이듬해 경기도 연천전투에서 포탄에 맞아 제대하는 등 가족 전체가 수난을 겪었지만 동생 제렬씨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다.
"일본에 있던 큰형이 조총련측에 명단을 제출하는 등 백방으로 동생의 행방을 수소문해보았지만 감감무소식이어 한 때 포기하려고도 했다"는 제민씨.
"명절날이나 부모님 제사날이면 동생의 사진을 보면서 여러날을 눈물 흘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어 주어서 다행"이라며 동생과 만날 날을 기약했다.
# "죽은 줄만 알고 있었는데 살아 있다니.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북적의 생사확인 의뢰 명단에 경북 봉화군 내성면 문단리가 고향인 언니 황춘기(72)씨가 남쪽의 가족들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동생 황만술(65·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씨와 조카 황구식(58)씨 등은 언니 고모가 살아 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춘기씨의 형제 자매는 4남5녀. 이중 춘기씨를 비롯한 오빠 2명과 자신 등 3남매가 6.25전쟁의 와중에 행방불명이 된 것. 춘기씨는 전쟁이 나기 2년전 봉화 법전의 강씨 문중으로 시집을 간 상태에서 전쟁 발발로 이산가족이 됐다.
"4남5녀중 6.25사변의 와중에 3남매가 행방불명이돼 20년과 15년전 각각 작고한 부모님이 항상 가슴속에 묻어 두셨는데…,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언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 하실텐데"라며 눈물을 훔치는 막내 만술씨.
만술씨는 "TV를 통해 남북이산가족들의 상봉장면을 보고 언니 생각이 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언니가 북한의 강원도 원산시 평화동에서 살아 있어 죽기전에 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게돼 기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춘기씨가 찾고 있는 남한의 5남매는 모두들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언니 윤이(77.현재명 영길)씨는 영주시 창진동에, 오빠 영인(76)씨는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여동생 하위(70.현재명 하우)씨는 충북 충주시 문화동에,영술(68)시는 안동시 옥동에,막내 만술(65)씨는 봉화에 살고 있고, 조카 구식씨가 고향을 지키고 있다.
구식씨는 "지난 8월에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한 상태에서 이번에 북한에서 고모가 우리가족들의 생사확인을 의뢰한 만큼 하루빨리 상ㅂ종의 기쁨을 맛보았으면 좋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봉화·金振萬기자 factk@imaeil.com
# 【울산】"몇달만 일찍 소식이 왔더라면...."
죽은 줄만 알았던 형 이일걸(71)씨가 북한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남한의 동생 익걸(60.부산시 감천동. 중학교교사), 용환(54)씨 형제는 들은 아흔살이 넘도록 큰아들을 못잊어 하다 올봄에 돌아가신 부친 이민섭(92)씨와 불과 한달전에 타계한 둘째형 승환(64)씨를 떠 올리며 안타까워 했다.'
2일 북한 적십자가가 전달해 온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의뢰자 명단에 일걸씨가 들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익걸씨는 "북한에 형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고 너무 반가워 얼떨떨했다"며 "어머니는 지난 61년 작고하셨지만 아버지는 수년전까지 사망신고도 하지 않고 형님을 그리워하다 지난 3월에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익걸씨는 "공부를 잘 한 큰 형은 당시 6년제이던 부산 경남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진학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지게 됐다"며 "당시 가족들은 모두 울산에 있었고 큰 형만 서울에 있다가 전쟁 후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일걸씨의 사촌 동생 이정환(65.울산시 남구 무거동)씨는 "어릴때 귀여워해 주던 사촌형이 지금까지 사촌동생들의 이름까지 잊지 않고 찾아 주니 꿈만 같다"며 까마득한 옛일들을 회상했다.
呂七會기자 chilhoe@imaeil.com
#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이 북한에 살아 있다니…, 꿈만 같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황명수(79.여.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991)씨는 북한에 있는 동생 룡진(66)씨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2일 전해 듣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전에 룡이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다"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황씨 가족들이 2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난 동생(룡진)과 헤어진 시기는 지난 50년 6.25 전쟁이 터진 그해 8월. 마을에 인민군이 몰려오자 가족들은 당시 16살로 중학교에 다녔던 동생에게 포항시 북구 흥해읍 달전리 집에서 외가가 있는 흥해 덕성리로 혼자 피난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동생은 아무런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고, 그후론 50년간이나 소식을 알 수 없었다는 것.
황씨는 "룡진이가 형제 중 가장 똑똑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면서 부모님은 아들의 행방을 찾다가 20~30년전 가슴에 한을 품고 숨졌다고 했다.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갔던 명수씨는 젊은 시절 두 자식과 남편을 잃고 현재 혼자 흥해 망천동에서 살고 있다. 가족중 큰 오빠는 10여년전 숨졌으며 여동생 영수(75), 성자(70)씨가 포항 흥해읍에 거주하고 있다. 가족들은 동생이 죽은 줄로만 알았지, 월북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죽기전에 그동안 생사조차 확인을 못했던 막내 동생을 꼭 한번 만나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포항.崔潤彩기자 cychoi@imaeil.com
지역 생사확인자는 모두 11명.
북한적십자사에서 남측에 전달한 대구.경북지역 생사확인 의뢰자 15명 가운데 2일 오후 8시 현재 11명의 가족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측 의뢰자 중 최고령인 리동숙(여.79)씨의 동생 동현(여.72, 전 서라벌꽃예술협회 이사장)씨가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살고 있고, 북한군 장성으로 알려진 김학만(69)씨의 동생 숙희(여.68)씨도 경북 예천군 예천읍 노하리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동현씨는 북한에 살던 남편이 수년전에 타계한 것으로 확인했고, 그 남편이 아내와 자녀를 둔 사실을 최근에 확인했다.
▲리동숙(여.79) = 동생 동현(여.72.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조용암(68) = 형 말암(71.청송군 청송읍 부곡리)
▲김학만(69) = 동생 숙희(여.68.예천군 예천읍 노하리)
▲황춘기(여.72) = 동생 만술(여.65.봉화군 내성면 문단리)
▲김재렬(60) = 형 제민(70.대구시 북구 대현2동)
▲정해춘(67) = 동생 해조(55.영주시 가흥2동)
▲리동식(67) = 형 경식(73.인천시 서구 석남동)
▲황룡진(66) = 누나 명수(79.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상팔(67) = 동생 상일(50.예천군 하리면 부초리)
▲권순영(67) = 형 순호(79.예천군 용궁면 읍부리)
▲박정수(69) = 동생 택수(52.안동시 송현동)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