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13회 매일여성 백일장 장원 작품-산문 여고부

오늘도 낡고 허름한 거울앞에 서 있다. 오래되어서 듬성듬성 파인 자국이 있고, 많은 흠집이 나 있는 전신거울이다. 하지만 나는 그 거울이 좋다. 오랜 때가 끼여 정확히 보자면 눈을 한껏 찌푸려 뜨려야 하지만, 그 거울이 좋다. 나는 흐릿한 실루엣의 내 모습이지만 다른 어떤 윤이 나게 닦아놓은 유리에 비친 모습보다 더 잘 보이는 듯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를 비춰본다.

이 거울앞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거울을 사랑하는 이유다. 세상공기의 무게와 중력의 힘을 저히 견뎌낼 수가 없어 가라앉아 버리고 싶어질 때, 내 자신의 이기와 욕심이 양심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고 기쁨에 펄럭일 때, 이겨내지 못한 나의 용기와 믿음에 초라해지는 내 자신이 미워질 때, 이 거울은 나에게 희망과 용기와 꿈을 주는 내 삶의 1등급 공신인 것이다.

빛이 내 몸에 부딪혀 거울에 반사되고, 다시 나의 시신경에서 뇌로 전달되는 그 짧은 찰나에 나의 상상의 힘이 작용하여 나의 바램은 이루어진다.

신부님이 되어 용기를 낸 나 자신의 고백도 들어보고, 가수가 되어 춤추고 노래도 불러보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여 보고, 조금은 독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의 잘못도 충고해 준다.

그 거울은 이렇게 나의 소망들을 간접적으로 실현시켜 줌으로써 내가 쓰러지지 않고 한 발짝 더 앞으로 내딛을 수 있게 한다.

나는 이런 오래된 추억을 간직할 만한 매개체가 있다는 것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쨍"

그런데 어느 날, 이 거울이 깨져 버렸다. 흐릿했지만 내 모습이 비치던 거울은 쩍쩍 갈라져 버려 깨진 나의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학교 진학 문제로 싸운 뒤, 몇 년동안 사이가 좋지않던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신지 내 방에 들어 오셨다가 거울을 깨신 것이다."아빠! 제 방에는 왜 들어오셨어요?"속상한 마음에 그 동안 쌓인 감정까지 보태서 소리를 크게 내버렸다.

미안하던 말씀도 안 하시고 멀뚱히 서 계시던 아버지께서도 화가 나셨는지 역정을 내신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뒤, 방을 나가신 아버지를 원망하며 깨진 유리를 치우고 있었다. 깨진 유리아래 하얀 봉투가 보였다. 봉투 안에는 부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소중한 물건에 가까이 두면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며 보여주신 것이었다. 아마도 거울 뒤쪽에 붙여 주시려 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한 내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이제야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았다며칠 후, 아버지의 사랑이 묻혀진 새 거울이 내 방벽에 걸렸고, 친근한 따스함이 있던 헌 거울은 나의 마음속에 영원히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부적은 새로운 거울 뒤쪽 벽에 붙여두었다. 영원한 아버지와의 사랑을 기리며…….

이제부터 나는 우리방 거울을 보며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고, 내 마음 속의 거울에 나를 비추며 계속 희망을 키워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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