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호교사 백진하씨의 생명나누기

꼭꼭 숨어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세상엔 미인이 참 많다. 미인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

'사랑의 릴레이' 소문을 들은 기자는 곧장 포항으로 내달렸다. 누군가가 신장을 기증하면 그 수혜자 가족이 두번째 기증자가 돼 그에 보답하고, 그 바통을 받아 세번째 기증자가 나온다지 않는가? 듣기만 해도 이 얼마나 가슴 벅차는 아름다움인가!

우연한 계기…단단한 결심

그러나 그러려면 맨 앞서 첫 불을 밝힘으로써 스스로 불씨가 되는 사람이 필요한 법. 백진하(29·여)씨가 바로 그 불씨였다. 이 보다 더한 미인이 있을 수 있을까?찾아가긴 포항으로 갔지만, 그녀는 구미의 한 중학교 양호교사라고 했다. 신장 기증 수술을 받느라 13일간 입원했다가 요양차 포항 친정에 가 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기혼 주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앳되고 맑았다. 목소리가 낮긴 했지만 이틀전 퇴원한 사람답잖게 건강하게도 보였다.

백씨가 장기 기증을 결심하게 된 것은 4년 전. 그런 일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 본 바 없던 차였지만, 우연히 주워 든 한 장의 안내장이 계기를 만들었다. 한 자 한 자 읽어 가던 중 울컥 깨우침이 찾아 왔고, 그것은 그대로 단단한 결심이 됐다. 당장 신장을 기증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장기 기증, 그것은 호주머니에서 몇 푼의 동전을 끄집어 내던지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감히 넘보기 힘든 높은 담을 넘어야 하는 일.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혼을 하고도 기증하고 싶으면 그때 가서 해라". 겨우 얻어낸 것이 조건부 허락이었다. 그 뒤 작년에 결혼했고, 남편의 동의를 받아 지난달에 신장을 기증했다.

혈액·골수도 기증 서약

"신장이 하나만 남게 됐다는 이유로 어떤 고통을 만나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투석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소한 불편일 뿐이리라 믿습니다". 그녀는 신장뿐 아니라 혈액·골수도 기증키로 이미 서약해 뒀다. 게다가 뇌사하는 일이 생긴다면 심장·폐·췌장·간 등 모든 걸 바치겠다고도 약속해 놨다.

'사랑의 릴레이'에 불을 지핀 '미인'이면서도 백씨는 그저 자신을 '평범한 양호교사'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지극한 종교인도 아니고 봉사정신에 빠져든 것도 아니라고 했다. 기자가 찾아 온 것이 오히려 놀랍다고 했다". 방학을 택해야 했었는데…. 한달씩이나 병가를 내는 바람에 학생들에게 폐를 끼쳤다고 오히려 미안해 할 뿐이었다.

하지만 열매는 지금 계속 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백씨의 신장을 받은 환자의 언니는 전라도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그 전라도 환자의 어머니는 경기도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이게 어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랴!

'사랑의 열매'계속 이어져

신장을 주는 것은 다만 육신의 생명을 나눠 주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못잖게 지고한 정신의 생명, 즉 사랑을 온누리로 퍼뜨려 내보내는 일이다. "신장 기증 해 보세요. 저도 처음 받는 수술이라 떨었지만 아프지도 않았어요".

몸집이 작은 백씨가 덩치 큰 취재기자들을 향해 세 번이나 권했다.

제 몫의 거리를 이미 완주하고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백씨, 그녀는 확실히 미인이었다. 그 덕분에 사랑의 릴레이도 계속되고 있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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