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피다우로스와 자금성

서양 연극의 뿌리가 고대 그리스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대로이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예배에서 기원했다는 고대 그리스의 노천극장은 디오니소스 제단이 설치된 원형의 무대(오케스트라)와 그를 둘러싼 계단식 반원형의 관객석(코일론)으로 이뤄지고 있다.

나는 30여년전 처음 그리스를 여행했을 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밑에 자리잡은 디오니소스 테아터를 찾아가 보았다. 손이 물들듯이 새파란 하늘밑에 2천수백년의 세월을 견디고 젖빛 광택을 머금고 있는 대리석의 '코일론'에 앉아본다는 것은 감동적이었다.

그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뒤 나는 두번째 그리스를 여행했을 때도 디오니소스 극장을 찾아보려했으나 이제는 그 주위에 방책을 쳐서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그대신 이번에는 또다른 고대 극장의 유물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 수확이었다. 코린토 해협을 건너 아테네와 사로니케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펠로포네스 동안(東岸)의 에피다우로스 극장이 그것이었다.

직경 20m의 '오케스트라'(무대)는 물론이고 '스케네'(무대조형물)의 일부까지 남아있고 인근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무엇보다도 파란 숲에 둘러싸인 '코일론'(관객석)-계단식으로 54열까지 올라간 1만3천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부채처럼 펼쳐진 대리석 객석의 위용이 장관이었다.

나는 그 가장 높은 객석의 마지막 줄에 앉아 저 밑 오케스트라(무대)에서 종이를 찢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숲속 극장의 아쿠스티크(음향효과)에도 물론 놀랐으나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30년전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에 앉아보았을 때엔 2천여년의 세월을 견딘 대리석 극장의 역사적 '시간'에 감탄했으나 30년 후 에피다우로스 극장에서 밑을 부감했을 때엔 극장의 관객 '공간'에 감탄했다. 그것은 첫번째 그리스 여행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다. 객석수로만 따지자면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이 1만7천석으로 에피다우로스 극장보다 더욱 규모가 큰데도 불구하고-.

객석이 몇천 석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2천500년전에 서양의 지중해변에는 1만명을 넘는 '시민'이 참관하는 극장 공연이 있었고 그것을 구경하는 1만명이 넘는 공중 또는 공론권이 있었고 그들을 위한 자리가 공공시설에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의 아테네에서 깨닫지 못했던 것을 30년 후의 에피다우로스에서 깨닫게 된 것은 그 사이에 나의 중국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페킹 오페라'라고 하는 '경극'(京劇)을 나는 20여년 전 타이페이(臺北)에서 처음 보았다. 경극의 본 고장 베이징(北京)에 가서는 막상 표까지 구해놓고 몸이 불편해 공연을 보지 못했으나 그대신 더욱 기막힌 것을 구경했다. 바로 자금성(紫金城) 안의 경극 공연장을 본 것이다. 그곳에는 경극 공연을 위한 화려한 무대가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그 무대만한 크기로 그를 구경하는 단 한 사람의 관객, 대청(大淸)제국 황제의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명.청제국의 황궁인 자금성이 건립된 것은 15세기초. 경극이 베이징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연극형태로 개발되고 널리 보급된 것은 청말의 19세기 중엽부터로 알려져 있다.

한 쪽에는 2천500년전부터 1만명이 넘는 시민을 위한 공연과 객석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100여년전까지도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한 공연과 무대가 있었다는 것-.

나는 거기에서 서양과 동양 문명의 어떤 근원적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특히 최근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놀라게 한 북한의 자랑이라는 '매스게임'인가 '카드섹션'인가 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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