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현장-파리 현대미술가 이영배씨 귀향 작업장

파리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이영배(44)씨는 지난 4월 고향인 경북 청도에 작업장을 열었다. 학업 등으로 고향을 떠난지 30년만의 귀향. 어린 시절 냇가와 산에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까까머리 소년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는 이번에 서울과 대구에서 한꺼번에 3건이나 되는 큼지막한 전시회를 갖는다. 국립현대미술관(15~12월30일까지)과 가나아트갤러리(15~26일),그리고 대구 시공갤러리(28~12월10일) 초대전.

지난 1월초 국립현대미술관이 뛰어난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주는 '올해의 작가'에 노상균씨와 함께 선정됐고 이번에 그에따른 초대전을 갖게 된 것이다. 이씨는 '올해의 작가' 초대전 작품 준비도 할겸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대산초등(폐교)에 작업장을 열어 지난 6개월간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며 작업에만 열중했다. 노란 은행나무 낙엽들로 늦가을의 정취가 한창이던 지난 9일, 이씨는 작업장에서 서울로 갈 작품을 트럭에 싣느라 바빴다. 그간 작업한 결실들을 이제 선 보일 때가 된 것이다.

지난 79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후 90년 파리로 활동무대를 옮기기전까지만 해도 구상적인 평면작품을 주로 했던 그는 도불후 한동안 '새로운 예술'에 대한 고민에 휩싸였다. 예술에 대한 욕구와 열정이기도 했지만 '예술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기도 했다는 것.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모색하던 그는 '숯'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림'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숯'을 선택한 것은 먹과 상통하는 숯으로 동양적 정신성을 나타낼 수 있고 불쏘시개 정도의 사물에서도 색다른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직접 나무 뿌리를 태워 숯을 만들고 보라색으로 물들이기도 하면서 '숯' 자체의 물성을 떠나 환상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하거나 숯덩이를 끈으로 묶어 다양한 암시성을 함축하는 그의 작품들은 르 피가로 등 유력 언론과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98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는 아뜰리에에서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추게 됐다.

역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진작가 이우환씨는 그의 숯작품을 두고 '그대로는 그냥 숯인데 삶이니 역사,꽃,섹스,전쟁,죽음,석유 따위의 말을 곁들이면 숯불처럼 신비롭게 만가지 상상력이 피어나니 참 희한한 메타포(비유)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그간 이국의 풍토속에서 치열한 예술정신을 추구해온 그의 작품세계가 가감없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미술계는 그의 이번 전시회를 주목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회가 끝나면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지만 내년부터는 국내에도 연중 3~4개월씩 머물면서 작업할 계획이다. 그는 "고향에서 작업하니 상상력과 감수성이 더해지는 것 같다"며 다시 작업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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