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는 우리 남매들을 키우실 때 외출을 모르셨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던가? 나 역시 40대 중반까지만 해도 집과 병원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했다. 개업의 시절, 환자가 없을때면 소설책 읽기를 좋아했고, 찾아오는 환아의 엄마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아이들 놀이시설이 그다지 많지 않던 때라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를 즐겨(?) 찾아왔다. 소아과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일 중엔 환아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의사에게 아픈 아이에 대한 이야기며 이런 저런 걱정거리 등을 반쯤 덜어놓은뒤 아이엄마들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소아과 의사로서의 경험으로 볼때 아픈 아이를 걱정하는 순서는 엄마,의사,아빠 순이 아닐까 싶다. 아빠들에겐 미안하지만, 아이들이 아프면 화만 낸다는 아빠도 적지않다는 얘기를 엄마들로부터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러는 아주 훌륭한 아빠도 있었고, 드물게는 그렇지 못한 아빠도 있었는데, 선천성 기형이나 불구 아이를 갖게 됐을때 보여주는 상반된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여러 장소에서 그때의 엄마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내가 누리는 일상 속의 행복이다. 난 항상 우리집 아이 또래의 아이들을 그중 예뻐했었고, 우리아이처럼 엄마가 직장일로 잘 돌봐주지 못하는 아이들한테 더 정이 갔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환아 엄마가 오면 붙들고 이야기 하느라고 기다리던 다른 환아 부모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던, 철없는 의사이기도 했다.
이야기 좋아하는 내가 '이야기 보따리'를 펼치면 친구들은 여전히 즐거워한다. 내 이야기도,남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얼마든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 수 있는 것은 그 시절 부지런히 읽어둔 책 덕분이 아닐까 싶다.
경동정보대 평생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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