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2)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눈을 뜨자 철마(鐵馬)는 숨을 고르며 하얼빈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전 6시30분. 전날 옌지에서 오후 7시30분에 일반 쾌속열차 보쾌(普快)에 몸을 얹었으니 정확하게 11시간이 걸린 셈이다. 희붐한 신새벽의 여명 사이로 핏줄처럼 얽히고 설킨 열차 선로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에서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분포돼 있는데, 하얼빈의 선로는 웬만한 주요 선로들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여객과 화물 모두 편리하게 하얼빈에 닿을 수 있고, 또한 나갈 수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그리고 동북3성의 도시 가운데 선양, 창춘, 하얼빈은 철도와 항공에 관한 한 교통의 요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베이징에서 출발해 만주라인(TMR)을 타고 가다 러시아의 치타를 경유해 모스크바까지 가는 국제열차와 화물열차들도 하얼빈은 반드시 통과한다. 화물의 경우 하얼빈에서는 공산품이 주로 실려 나가고 있다. 신새벽의 눈덮인 하얼빈 선로 위에서 수 십량의 화물열차들이 운행 채비를 하고 있다. 하얼빈. 여진족 말로 '명예'를 뜻하고 만주족 말로 '그물을 말리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주도다. 인구는 500만명 정도. 1996년에는 동계올림픽이 이곳에서 열렸다.

역사적으로는 청나라 왕조인 만주족의 발상지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황제 부이의 기념관이 이곳에 있다. 기념관은 일제의 조종을 받으며 허수아비 황제로서 우울하게 살아가던 부이가 해방전쟁 이후 의식개조 과정을 거쳐 인간적인 웃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당초에는 쑹화(松花)강변의 자그마한 어촌에 불과했으나 19세기말에 러시아가 청나라로부터 철도부설권을 획득, 이곳을 철도 건설의 기지로 삼으면서 비로소 근대적 도시의 면모를 갖춘 주요 도시로 발전했다. 1917년에는 러시아 10월혁명을 피해 도주한 러시아 귀족 50만명이 합류, 한동안 러시아인들이 인구의 주류를 형성하기도 했다. 따라서 하얼빈 시내를 걸어보면 러시아식 건축물과 러시아정교 교회, 러시아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얼빈에는 일본의 잔재도 많이 남아 있다. 1932년부터 2차대전이 종료될 때까지 일본에 점령당했던 탓이다. 일본군 731부대의 세균실험기지 잔해가 이곳에 있다. 그래서 하얼빈은 중국 내에서도 중국, 러시아, 일본의 문화가 조금씩 뒤섞여 있는 특이한 도시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도시가 독립군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다가온다. 주지하다시피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에 현재의 빈장역(濱江驛)인 하얼빈역에서 러시아군대를 사열하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역을 빠져 나오니 정면 옥상빌딩에 LG광고판이 자리잡고 있다. 재중동포 한모씨는 "중국에서는 LG가 거의 전역에 분포돼 있고, 제품의 인지도와 인기도가 높다"고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하얼빈의 주요 빌딩내 엘리베이터와 호텔 객실의 TV, 에어컨 등은 대개 LG마크를 달고 있다. 호텔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오전 8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얼빈의 겨울 평균 일출 시각은 8시30분, 일몰 시각은 3시30분이다. 10월 중순부터 4월까지를 겨울로 잡으니 하얼빈의 겨울은 일년의 절반을 넘는다. 추위도 유명하다.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20℃다. 밤에는 영하 40℃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사상 최저 기온은 영하 52℃로 기록돼 있다.낮이라도 20m높이의 쑹화강 철교 위의 추위는 무시무시하다. 철교 위에서 전자 카메라를 들고 꽝꽝 언 쑹화강을 촬영하던 사진기자는 "카메라가 서 버렸다"며 감동인지 탄식인지 선뜻 구분하기 애매한 말을 자꾸 토해낸다.

이 추위를 하얼빈 사람들은 매우 슬기롭게 극복해 내고 있다. 매년 12월말부터 한 달 남짓 동안 자오린(兆麟)공원과 쑹화강변 등지에서 빙등제(氷燈祭)를 열어 스스로를 위로하고 관광객을 부르는 것이다. 빙등제 때는 70~80㎝ 두께의 쑹화강 얼음덩어리로 만든 얼음조각들이 전시된다. 쑹화강변에서는 '명달집단(明達集團)'이란 하얼빈 기업이 수백명의 예술가들과 인부들을 동원해 거대한 얼음 성채를 만들고 있고, 자오린공원에서도 조각행위가 한창이다.

저녁시간이 되자 대대로 하얼빈에 살고 있는 한족출신의 한 은행지점장은 취재팀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면서 동북지방의 의미와 중국의 경제상황에 관해 주관을 섞어 성실하게 설명했다. 그 내용을 거칠게 정리하면 이러하다.

"동북3성에서는 항일 영웅들이 많이 났다. 자오린공원은 항일 명장 리자오린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일제때는 한족과 조선인들이 합심해서 일본인들을 때려잡았다. 중국 해방전쟁 때도 동북은 해방군의 주요 거점이었다. 해방군의 동북야전군 사령관 린빠이(林彪)는 특히 전략적으로 이곳을 중시했다. 당시 머리가 좋고 호방하며 당파의식이 거의 없는 동북사람들은 해방군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제적으로는 예로부터 공업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하얼빈에는 국가경제의 근간이 되는 국영기업이 많다. 탱크와 헬리콥터같은 군수물자도 여기에서 생산된다. 수력발전소가 많아 전기가 많이 생산되는 것도 강점이다. LG산전이 이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것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음날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행 국제열차의 경우 하얼빈에서는 목요일과 일요일 두 차례 운행되는데 기차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철도역에서는 예매처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철도관계자가 지목한 여행사는 다른 여행사를 들먹였고, 그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됐다. 두어시간 발품을 팔았으나 최종적인 대답은 국제열차의 경우 베이징에서 일괄적으로 예매, 판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언제든 표를 구해주기로 한 베이징의 관계자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취재팀은 당초 계획을 수정해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넘어가 역순을 밟기로 결정하고 황급히 창춘행 열차표를 끊었다.

-글·이광우기자, 사진·강원태기자

---안중근 의사 의거 빈장역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현장인 하얼빈역은 현재 하얼빈 시내용 지선에 자리잡은 빈장(濱江)역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현 하얼빈역과는 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떨어져 있다. 역사 앞에서는 노점상들이 자스민차에 간장과 향료,소금 따위를 넣고 계란을 삶아 내거나 해바라기씨, 꽈배기 따위를 팔고 있다.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며 차를 마셨다는 다방은 흔적도 없다.역사 안은 어두컴컴하고 이용객들은 가난해 보인다. 선로 안으로 들어가 사살 현장쯤으로 지목되는 현장과 분위기를 사진으로 찍었다. 동행한 한족 출신의 은행지점장은 "안 의사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 몇몇 뜻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의거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서 "선로 변에 간단한 설명만이라도 붙여놓는다면 한국인들을 위한 관광지로도 괜찮은 장소가 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광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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