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차룰(rule)'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급소 공격, 물어 뜯기 금지 등 최소한의 제한만 둔 채 과격하고 거친 싸움을 벌여보자는 의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근래 '야차룰' 정치를 펼쳐왔다. 기존 정치 문법 속 '신사협정'과는 궤가 달랐다. 외부뿐만 아닌 내부 갈등에서도 야차룰이 적용됐다. 환호하는 지지자도 적잖았지만 그만큼 반작용도 심했다.
이들이 지난달 30일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대면한 당시 화제가 된 장면이 있다. 무려 '악수'를 한 것이다. 이들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최소한의 협치 의지로 해석되는 악수마저도 지난 다섯 달간 하지 않았다. 야차룰이 그렇다. '매너' 따위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오가는 환담 속에서 두 대표가 '좋은 정치'를 약속한 점은 이들의 지난 행보, 현 처지와 연결돼 더욱 이목을 끌었다. 당시 장 대표는 한동훈 전 대표의 축출과 단식, 정 대표는 '기습 합당' 카드와 '1인1표제'에 대한 반발로 고초를 겪었다. 단식과 중앙위 투표는 끝났지만 이들의 리더십 위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두 대표는 위기 탈출에 혈안이 돼 있다. 선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탈출 전략부터 빠르게 짜야 할 때다. 장 대표는 또 한 번의 정면돌파를 택했고, 정 대표는 아직 머뭇대는 형국이다. 두 '야차룰' 정치 모델의 결말은 어떻게 연출될까.
◆직진? 자해? 기존 정치 문법 파괴…양당 '분란' 최고조
두 대표의 행보가 과격하다는 평을 듣는 배경에는 기존 정치 문법과 동떨어진 결단, 승부수를 자주 보여준다는 측면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당 내 총의를 모으려는 '시늉'이라도 존재했다면, 이들은 일정 부분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곧바로 내지르는 선택지를 줄곧 집어들었다.
장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계엄 옹호 세력과의 결별, 계엄 사과 등으로 대표되는 당 일각의 집요한 요구를 취임 반 년째 철저히 외면해왔다. 게다가 해당 사안에 있어서는 완전한 대척점에 선 한 전 대표의 축출 작업은 장 대표 체제에서 본격화했다.
당 안팎에서는 양 측의 '과실 비율'과 징계의 적절성 등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난립하며 잡음이 이어졌다. 당 내 계파갈등은 항상 있어왔지만, 이같은 파열음은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는 평가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마저도 감수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 대표는 '1인 1표제' 도입과 조국혁신당 합당 논의를 밀어붙이다 당 내 반발에 직면했다. 두 가지 모두 정 대표의 당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 나아가 당 대표 재선을 위한 포석에 가깝다는 해석이 따라붙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거듭 제기되는 이견에도 두 사안을 밀어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본다.
게다가 당 내에서는 각종 논란·의혹이 불거진 민주당 의원 중 정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장경태·최민희 의원과, 그렇지 않다고 평가되는 이춘석·강선우 의원에 대한 자체감사 및 징계 절차 처리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반청(반정청래)계 최고위원들은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 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두 대표는 당 내 반발을 잠재우는 방법도 비슷했다. '외집단'을 향한 강력한 투쟁 의지를 내비침으로써, 앞선 과격한 결단 역시 그 일환으로 포장하는 격이다. 불만이야 남아있겠지만, 여야의 강대강 대치 속에서 섣불리 토를 달기 어려운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장 대표는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24시간 필리버스터', 단식 등 대여투쟁 전면에서 독한 모습을 선보였다. 필리버스터는 범여권에 의해 강제 중단됐고, 단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려 10년 만에 국회에 방문해 만류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정치권에서는 장 대표가 두 경우에서 모두 지지층 결집에 유리한 출구 전략을 구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대표는 수세에 몰릴 때마다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과 위헌정당해산심판 대상으로 규정하는 등 야권을 향한 강경발언을 쏘아붙였다. 각종 특검과 언론 규제 법안 등의 통과를 진두지휘하는 등 여당·원내 다수당의 지위를 활용한 정치적 공세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이 역시 강성 지지층의 규합을 통해 정 대표가 리더십을 재정비하는 기회가 됐다.
◆"누구든 직 걸면 재신임 투표" 장동혁, 이번에도 정면돌파 선언
장 대표는 이번 부침에서도 어김없이 정면 돌파를 택했다.
장 대표는 지난 5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일(6일)까지 누구라도 요구하면 여기에 응해 전 당원 투표로 뜻을 묻겠다. 당대표뿐 아니라 의원직도 사퇴하겠다"면서 "다만 그런 요구를 할 의원이나 단체장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또한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의 이른바 '당게(당원 게시판) 사태'에 대해 "사실상의 여론 조작이라는 게 사건의 본질"이라면서 "저 또한 고발된 상태고 한 전 대표도 당무감사위원장을 고발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불가피하게 수사로 밝혀질 사항이다. 수사에 협조해 최종적 진실은 수사를 통해 밝히겠다고 이미 말했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이후 자신의 사퇴·재신임 투표 요구를 요구해온 친한(친한동훈)계 의원 16명과 오세훈 서울시장,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 내 일부 인사들을 향한 '대응사격'도 이어졌다.
장 대표는 "징계 문제는 윤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의 결정"이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원이나 광역단체장이 윤리위와 최고위 결정에 불만이 있다고 당대표의 책임을 물어 재신임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당대표의 사퇴나 재신임 결정은 당원의 선택밖에 없다. 재신임 요구는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당원들에 대한 도전"이라며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가벼이 소장파나 개혁파 이름으로 당대표의 리더십을 흔드는 것은 당의 건강한 모습을 위해서도 적절치 않다"고 못박았다.
이러한 장 대표의 발언 직후 당 내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YTN라디오에서 "온실 속 화초들을 장동혁이라는 잡초가 확실하게 제압한 한 방"이라면서 "'내가 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내 방식으로 매듭을 짓겠다'는 게 장동혁의 정치"라고 평가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KBS라디오에서 "투표를 실제로 요구해도 아마 압도적인 표차로 당대표의 재신임이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친한계인 한지아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미 결과가 보이는 판을 깔아놓고 '당원이 결정한다'는 건 책임 정치가 아니라 계산 정치"라고 적는 등 장 대표를 비판했다.
친한계 우재준 최고위원도 "'의원직을 걸라'는 것은 개헌선을 방어해야 하는 제1야당으로서의 책임마저 가볍게 여기는 태도"라고 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 대표가 원하는 당원 투표 결과가 나온다 한들, 그것이 민심을 거스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거들었다.
◆"이러다 가래로도 못 막아"…지르지도 거두지도 못하는 정청래, 왜?
정 대표는 자타공인 핵심 공약인 '1인 1표제'가 지난 3일 중앙위 과반을 가까스로 넘기며 안정감을 되찾는 듯 했지만 이내 다시 수렁에 빠져들었다. 당 내 충분한 합의 없이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의제를 꺼내든 '승부수가' 끝내 '자충수'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6일 "민주당이 에이포(A4)용지 7장 분량의 '합당 절차 및 추진 일정 검토(안)'이라는 대외비 문건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문건에는 5주 내 합당을 위한 구체적인 시간표와 최고위원 배분, 기존 민주당 출신 인사들의 복당 절차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당 지도부는 "실무자가 만든 것으로 대표나 최고위에 보고된 내용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지만, 이는 조국혁신당과의 신경전으로 이미 달궈진 당 내 여론을 진정시키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이 가운데 최근 달라진 정 대표의 대응이 눈에 띈다. 정 대표는 반청계 인사들과의 접촉면을 오히려 넓히는 등 당 내 다양한 의견을 모두 수렴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이는 중앙위에서 한 차례 부결된 1인 1표제를 재추진하거나,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합당 논의를 발표하던 때에 비하면 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로 평가된다.
정 대표의 변화는 이재명 정부의 임기가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시점이니만큼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여당 대표'로서의 압박감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과반을 훌쩍 넘기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당 내 분란을 이유로 당 지지율과 동반 하락하기라도 한다면 정 대표가 '자기 정치'에 매몰됐다는 비판도 더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당 내에서는 정 대표가 단순히 저자세를 취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양보를 통해 내홍을 조속히 수습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 역시 이제와 합당을 철회할 경우 성과도 없이 당 내 혼란만 야기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하는 만큼, 긴 시간 숙고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민주당 3선 의원 모임의 대표인 소병훈 의원은 6일 국회에서 열린 정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합당 논란에 대해 "정청래 대표와 최고위원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시간을 끌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게 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소 의원은 모두발언을 통해 "당대표께서 합당을 충분히 제안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 우리 당이 마치 블랙홀에 빠지는 것처럼 모든 일이 합당 얘기에 빠져들고 있다"며 "여기 계신 의원님들도 하루에 수백, 수천 통의 문자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 대표는 "초선 의원님들과 (이미) 간담회를 했고 3선 의원, 중진 의원, 재선 의원 등과 계속 경청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며 "그리고 방금 원내대표께 빠른 시간 안에 전체 의원총회를 소집할 것을 요청드렸다"고 답했다.
이어 "이번 주 일요일에는 긴 시간 동안 최고위원들과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 하고 있다"며 "당의 명운이 달린 사안인 만큼 많은 의원님들의 귀중한 말씀을 듣고 총의를 모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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