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시골 명문고

프랑스의 유서 깊은 고등교육기관이 밀집해 있는 파리 5구는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최고 명문고인 '루이 르 그랑'과 '앙리 카트르'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전국에서 입학생을 받는 '루이 르 그랑'은 예외지만 이곳의 명문고에 진학하려면 일단 5구에 주소를 둬야 한다. 고교 평준화와 농·어촌 특별전형 도입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와 달리 비평준화 지역인 시골에 명문고들이 속속 등장, 각광을 받고 있다. 주소를 시골로 옮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지고 있다.

▲하지만 읍·면 소재 일부 명문고에 도시 지역 등 외지 학생들이 위장전입으로 대거 몰려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은 문제다. 심지어 특례 혜택을 노려 편법으로 전입한 외지 학생들이 절반을 웃도는 경우가 수두룩해 농·어민을 위한다는 취지를 무색케 한다. 더구나 그 지역 학생들이 되레 인근 지역의 고교로 유학을 떠나거나 실업계로 진학해야 하는 난센스마저 빚어지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일부 시골 명문고들이 명성을 올리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지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유치하는가 하면, 갖가지 편법으로 위장전입을 도와주는 경우마저 없지 않은 모양이다. 이 때문에 명문 반열에 들지 못하는 대부분의 지방 고교들은 명맥 유지가 힘들 정도로 학생들이 모자라는 '교육 왜곡' 현상도 심화되는 형편이다.

▲경북의 한 신흥 명문고는 지난해 신입생 261명 가운데 외지 학생이 179명으로 무려 68.5%에 이르렀으며, 지난 4년간 평균도 53%나 됐다. 이들 학생의 3분의 1 가량이 해마다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며, 올해는 이 특혜를 통해 4년제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전체 졸업생 314명의 44.2%인 139명이나 됐다고 한다. 이쯤 되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시골 명문고의 등장은 반가운 현상이다. 여건이 나쁜 농·어촌 학교 학생들의 잠재력이 발휘되게 하고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일류 대학에 많이 합격시키는 학교 만들기를 위해 사회의 그릇된 인식과 학부모들의 이기심에 동조하고, 심지어 그 지역 학생들까지 밀어내면서 '입시학원'으로 전락시켜서야 되겠는가. 본질에 합당하게 거듭나는 '시골 명문고'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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