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대명동 좁은 골목시장시뻘겋게 얼어버린 얼굴,

늙은 장사꾼들이 추위를 견디어보려고

허공에다

악을 쓰듯 호객(呼客)하고 있다.

악을 쓸 때마다

쭈그렁 바가지모냥 헐렁한 몸 속에서

산 고등어 같은 말들이

툭, 툭, 튀어나온다.

골목 양 켠을 오가며 말들이

만들어내는 시끌벅적한 숲,

머릿속 차가운 언어로는 가 닿지 못하는

이슬 촉촉한 숲, 오늘도

그 경계에서 금전적인 언어로

배추나 한 포기 거래하고

물러나올 뿐인,

- 서림 '박수근 4'

시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대명동 골목시장에 있기도 하고,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얼굴로 간난한 생계에 매달리고 있는 늙은 장사꾼에게 있기도 하다. 그게 시의 본 모습이다.

이 시인은 시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산 고등어같은 말들이 툭,툭, 튀어나온다'와 같은 싱싱하게 살아 퍼덕이는 구절이 건져지는 것이다. 시는 차가운 지식이나 계산이기보다는 차라리 삶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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