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중학생들의 학교 생활이 빡빡해지고 있다. 와글와글 떠들썩 하니 보내는 게 가장 좋을 때이지만 현실이 아이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기 때문. 이달 들어 대구시내 일부 중학교가 EBS 방송수업을 시작하면서 더욱 그렇게 됐다. 이때문에 지금, 학교는 과연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공부 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꽉 짜여진 아침 시간=수성구 한 중학교 신입생.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선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버스를 몇 승강장 타고 가야 하기 때문. 벌써 날씨가 더워져 버스 안이 짜증스럽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떠드는 것도 잠시. 8시15분이 되면 입을 닫아야 한다. 20분부터 40분까지 방송수업. 명상의 시간, 교장 선생님 훈화 등등이 이어진다. 담임 선생님의 아침 조회까지 마치고 나면 곧바로 정규 수업. 적잖은 학생들이 1교시도 시작하기 전에 지쳐 버린다.
◇무엇이 문제인가=상당수 교사들은 먼저 학교측의 '학력 우선주의'에 우려를 나타냈다. 중학교 경우 그나마 연합고사가 폐지돼 체험 위주, 인성 중심의 열린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는데 또 되돌아 서서 주입식 방송수업을 해서는 학습 의욕만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는 것.
교육청 정책에 마저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시교육청은 그동안 독서를 강조, 아침 시간을 독서에 활용토록 권장해 왔다. 이렇게 보면 아침 방송수업은 책 읽을 시간을 뺏는 셈.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을 뺏기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 역시 있다.
방송수업을 하면서 학부모 동의를 받도록 한 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학교에서 공부 시키겠다는데 어느 부모가 반대하겠느냐" "교육에 관해서는 학교가 더 전문화된 집단인데, 학부모에 물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등등. 대부분 문제는 학교가 독단적으로 처리하면서 유독 방송수업에 대해서만 동의를 물은 것은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한 요식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재비 때문에도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값은 학기당 2만5천원. 개인별로 보면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학생이 일괄 구입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사정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학교의 입장=방송수업은 수성.동구의 일부 중학교에서 시작돼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학교 측은 연합고사 폐지 이후 현격하게 떨어진 중학생들의 학력 보충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 주는데도 한몫 할 거라고 했다.
한 교장은 "학교운영위 결정에 따라 학부모 95%의 찬성을 얻어 방송수업을 시작했다"면서, "학력이 많이 떨어지고 분위기가 산만한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 반응=아침 시간이 늘 떠들썩했는데, 방송수업 이후 공부 분위기가 잡혀 좋다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취재팀이 만나 본 대부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TV를 보고 공부가 됩니까? 그냥 보는 척 하는 거죠. 시험이 닥친 것도 아닌데…". TV 소리가 시끄러워 짜증스럽다는 학생도 있었다. 방송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ㅂ여중 윤모양은 한 술 더 떴다. "아침에 시끄러우면 담임 선생님이 '자꾸 이러면 우리도 방송수업 한다'고 겁을 줘요. 그러면 금새 조용해지죠".
전교조 대구지부 임전수 정책실장은 "학부모 90% 이상이 방송수업에 찬성했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90% 이상은 이걸 싫어한다"고 했다. 그래서 "방송수업의 효과 자체에 대해서 조차 찬반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모든 학생에게 강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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