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상에 징집반대의 목소리가 소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군대가 필요없다는 주장은 무정부주의자그룹에서 제기되고 있다. 오직 평화만을 위해 일체의 전쟁가능성을 배제하려면 정부도 군대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의 징집반대론은 현행 병역의무와 징병제가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무시한 강제조치이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데서 출발한다. 그들은 현행징병제가 갖고 있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불공정성을 부각시키면서 그 대안으로 대체병역의무, 모병제와 직업군인제를 널리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60년대말 대학캠퍼스에서 군화 화형식이 있은 후 금기와 신성모독으로 전국적으로 경을 쳤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같은 징집반대론이, 비록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 삶의 의식과 사고가 너무 급변하고 있구나 하는 점에 대한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오리라 짐작된다. 마침 병역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되어 3년여 지명수배를 받아오던 박항로 원사가 드디어 군검찰에 검거되었다. 이로써 말로만 듣던 이른바 바람의 아들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며, 신의 아들들은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밝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이 시대의 우리 아들들은 병영 속에서 보내야 할 군복무를 즐겨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정서 속엔 전쟁과 생명에 대한 공포보다 재기발랄한 자유가 꽉 들어차 있다. 그와 더불어 애국심과 사회의 안전을 위한 책임윤리마저 희석되어 가고 있다. 이미 고전적인 냉전사고는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문제는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실현가능하고 납득할 만한 평화정책이 우리의 의식 속에 확실하게 각인되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혼란이다.
자기생명의 보존욕구는 본능적으로 평화를 희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평화는 전쟁과 갈등, 생명에 대한 위험을 전제하지 않고는 논의될 수도, 연구될 수도 없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군대폐지 주장에는 평화의 유토피아는 있으나 평화에 이르는 현실의 가교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의 꿈은 공상적인 유토피아의 범주에 머물뿐,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한 유토피아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징병제반대론자들의 주장도 현행 징집제도가 위헌일 개연성이 높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이 세대의 청년들에게 징병에 반대하고 나서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어떤 법률적인 제도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단을 받기까지는 합헌성을 추정받아야 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시민이 원칙적으로 자유하다는 자유의 출발추정과 함께, 의심스러울 때는 법령제도가 원칙적으로 합헌이라는 합헌성의 출발추정이 민주적 법치국가의 양대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위헌여부확정에 앞서 가상의 세계로부터 징집반대운동을 펴는 것은 우리의 의식과 삶의 질서를 혼동케 하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의식과 사고의 전환기이다. 병역의무의 신성성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세대의 젊은이들은 너무 세속화되었다. 정부는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제도들을 새롭게 손질해야 할 시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체병역의무제도는 양심상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려는 이들을 위해서 시급히 고려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람시의 말대로 낡은 것이 죽고 새 것이 탄생할 수 없는 중간시점에서 다양한 병적 증후군이 나타난다는 점을 인식할 때 더욱 그러하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