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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어머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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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아래/늙은 어머니는 늘/그렇듯 서 있었다//저문 곳 떠돌다 오는/아들을 위해 따슨 눈물밥 한 그릇/가슴에 묻어 두었다//지상에서 나를 위해 흘린/어머니의 눈물은/십이월의 금강석//더운 눈물이 세상을 떠돌다 온/부르튼 발등을 씻어준다//나는 어머니를 위해/별로 운 기억이 없다〉 지난 해 쓴 '눈물'이란 시이다. 지상에서 나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며 울어준 분이 어머니시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여덟, 미수(米壽)이시다. 쌀 미(米)자는 농부가 쌀 한 톨을 얻기까지 여든여덟(八十八)번 손이 간다고 해서 만들어진 상형문자이다. 미수란 귀신도 보이는 나이. 꼬부라진 허리며, 하얗게 서리가 덮인 머리칼이며, 검버섯 투성이의 얼굴이며, 몇 년 전 낙상으로 앉은뱅이 아닌 앉은뱅이로 지내는 어머니는 릴케식으로 말하면 '추억하는 모성'이다.

쉰이 넘은 나이에 중농(中農)의 가산을 탕진하고 고향 비탈로 돌아간 아버지, 그때부터 어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종동댁이란 택호로 불린 어머니는 여장부셨다. 궁여지책으로 구멍가게를 차렸지만 손수 술은 팔지 않았다. 반가의 친정 체통을 지킨다고 그랬을까? 초등학교 시절, 봄소풍이라도 가면 어머니는 과자나 음료수를 가득 담은 반티를 머리에 이고 십리길을 따라오곤 했다.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다. 멀찌감치 떨어져오라고 속으로 빌곤 하였다. 얼마나 철딱서니없는 짓이었던가?

어머니는 아무리 어려워도 비굴하지 않고 늘 당당했다. '죽으면 썩어질 몸'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며 집안 대소사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에겐 엄격했으나 남에게는 인자하셨다. 친척들이 오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 큰 손으로 냉수 한 대접이라도 내어놓아야 당신 마음이 편했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육자배기 가락 때문에 시인이 되었다'고 쓴 적이 있다. 저녁이면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곧장 잠이 들곤했다. 육자배기 가락을 듣고 있으면 알 수없는 슬픔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어느새 목젖이 젖어 꺽꺽 울음이 배어나오는 저 남도의 한, 그 한을 어머니는 숙명처럼 지니고 일생을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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