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권중로(48)씨는 10여 년 전 대구 도심에서 난데없는 '퍽치기'를 당했다. 술을 마신 것도, 누군가와 시비가 붙은 것도 아니었다. 그 탓에 시력을 잃었고 안마사로 나섰다.
그날 밤 10시쯤 직원들과 저녁을 먹고 헤어지던 길, 그의 지갑을 노린 괴한들이 흉기를 휘둘렀던 것.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한 전도사에게 발견돼 시내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거부당했다. 이미 가망이 없다는 섣부른 진단과 함께.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그는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이른바 '생명 포기각서'를 쓰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18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농기계 공장을 차린 직후였다.
"내 능력으로는 출세도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공무원이 떼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공무원 생활을 접고 빚을 내 사업을 시작한 이유였다. 흉기에 맞아 부서졌던 두개골엔 명함보다 큰 구멍이 지금껏 그대로 남아 있다. 권씨는 회복기간동안 자신이 맹인이 된 사실도 몰랐다.
"안정을 취하라고 일부러 어둡게 해둔 줄 알았어요. 애들 떠드는 소리가 나면 낮이고 조용하면 밤인 줄 알았지요". 그러나 반대였다. 아이들이 학교로 떠난 낮엔 조용했고 저녁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권씨는 시력상실과 함께 삶의 희망을 잃었다. 빚 독촉과 법정 소송은 그를 끝없이 괴롭혔다.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떡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추하지 않게 죽을까, 그 고민만 했어요".
1993년 권씨는 포도나무 선교회에서 맹인재활교육을 받았고 새 삶을 시작했다. 점자교육, 보행교육, 기독교 교리 등이 그를 죽음에서 삶으로 이끌었다. 그 뒤 안마 교육을 받았고 전문 안마사로 나섰다.
안마 시술소에서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IMF와 함께 퇴출당하고 말았다. 2년간의 들쭉날쭉한 공공근로 생활은 그를 무척 힘들게 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호텔출장 안마에 나서는 행운을 안았다.
"손님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가죠". 권씨는 24시간 손님을 기다린다. 캄캄한 새벽에도 손님이 찾으면 달서구 상인동 그의 집에서 동촌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간다"호텔에 대기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희들 입장에서는 택시비를 줄일 수 있고 호텔은 빠른 서비스를 해서 좋고요". 권씨는 호텔마다 안마사 대기실을 만들어 3, 4명씩 배치한다면 시각장애 안마사 100여명이 생활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끔씩 버스 정류장에서 시각 장애인들이 '쭛쭛번 버스가 오면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때가 있다. 혹 내가 탈 버스가 먼저 오더라도 휑 떠나지 말고 '저 가요' 라고 말해주고 떠나자.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내가 떠난 뒤에도 쭛쭛번 버스를 안내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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