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에 나를 만나러 오는 남자랑 사귄다. 40이 되었든 20이 되었든…'. 3주전 KBS 2TV '夜 한밤에'의 한 코너인 '보고싶다 친구야'에서 박경림이 한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밤 12시부터 2시간 조금 넘는 시간까지 친구를 휴대폰으로 호출한 후 약속장소에 나온 친구숫자에 의해 출연자의 인간성을 테스트(?)한다. 2주전에는 개그맨 김영철이 친구가 많이 나오지 않자 '나는 울산출신이어서'라고 변명했다가 '뉴욕에서 온 사람도 있어'라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지난 주 이선희에 의해 불려온 김미화는 술 취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홍록기의 전화를 받고 나타난 외국인 친구는 영문도 모르고 15명의 여성 출연자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은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즐기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이 '엿보기'의 전형적인 방법을 보여준 영화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리어 윈도우(Rear Window)'.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사진기자가 우연히 카메라 렌즈에 담긴 건너편 아파트에 거주하는 여인을 본 후, 그녀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훔쳐보기'는 이제까지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던 소재. 지금은 방송프로그램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미 CBS방송의 '생존자'는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문명과 격리된 섬에서 16명의 참여자가 생존해 가는 모습을 그린 프로그램. 출연자 중 매주 한 사람씩 투표에 의해 쫓겨나고 마지막 생존자는 상금 100만 달러를 받는다. 영화는 제한된 관객이 어두움 속에서 대형 스크린에 몰입하여 관람하기 때문에 신화가 될 수 있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허구와 쉽게 이별할 수 있다. 하지만 TV는 일상에서 수용되고 시청이 자유롭기 때문에 몰입이 근본적으로 차단된다. 그 결과 시청자는 TV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모방'과 '동일시'를 하고 싶어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훔쳐보기'는 극에 달한 듯 하다. '몰래 카메라'에 이어 극히 사적공간인 휴대폰을 몰래 엿듣는 '몰래 휴대폰'까지 등장했다. 방송 특성상 '몰래'는 불가능에 가깝다. 작위를 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출연자 섭외가 2주전쯤 결정되면 출연자는 가까운 친구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두기도 한다. 방송의 쇼는 대부분 허구. 하지만 시청자가 허구를 사실로 믿어야 시청률이 상승한다. 미국의 프로레슬링은 쇼지만 재미있다. 쇼를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기 보다 이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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