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골동품 수집상 안동 노명섭씨

노명섭(45)씨는 전국을 떠도는 골동품 장수다. 안동시 변두리에 거처 겸 골동품 갤러리를 열고 있지만 일주일에 3,4일은 문을 닫는다. 어느 한갓진 산골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를 골동품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찾기도 힘든 갤러리 간판엔 아예 '월, 화, 수 출장중'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았다. 그나마 잘 지켜지지 않아 그를 만나려면 날짜를 잘 맞추어야 한다.

그의 편력에는 짜여진 일정이 없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불현듯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난다."이 일은 예감이 중요하거든요. 갑자기 강원도엘 가고 싶어지면 가야 해요. 그런 날은 십중팔구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물건을 만납니다". 노씨는 순전히 영감에 의지해 발길을 정한다. 지금껏 가장 자주 찾은 곳은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방의 산골이다. 꼭히 그 지방에 귀한 골동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거기엔 노씨를 끄는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골동품 장수 노씨의 떠돌이 삶은 올해로 15년. 평균 30만㎞씩 탔던 1t 트럭을 5대나 바꾸었다. 15년간 150만㎞를 달린 셈이다. 쉬지 않고 전국을 떠돈 만큼 사연도 많다.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날엔 지명도 알 수 없는 강원도의 산골에서 차가 빠져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여름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덕을 오르던 차가 연기를 품으며 주저앉는 바람에 낭패를 당하기 일쑤. 그 덕분에 차 수리 실력은 수준급이다. 웬만한 고장이라면 스스로 고친다. 떠돌이 골동품 수집가 노씨의 고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연히 도둑으로 오인 받아 여러 차례 경찰서 신세를 져야 했다. 어렵게 사 모은 골동품을 하나하나 확인을 받느라 진땀도 뺐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찰서는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모두 골동품을 노리는 도둑들 탓이다. 그가 골동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0여년 전, 10대의 나이에 충북 제천에서 전자제품을 팔며 가가호호를 방문하던 시절이다. 이 집 저 집을 옮아 다니는 동안 마음을 끄는 물건을 보았고 그 물건들이 집주인의 무관심 속에 켜켜이 녹슬어 가는 것을 알게 됐다. 사 모으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그의 바람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한 것이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병원에 머물기를 8년. 노씨가 본격적으로 골동품 수집에 나선 것은 1986년 완쾌 후 안동으로 이사오면서부터다. 전 재산 40만원으로 여관방을 전전하며 골동품을 모았다. 가난 탓에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발견하고도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돈을 모아 다시 찾았을 땐 이미 도둑이 훔쳐간 뒤였다. 소장하고 싶은 물건도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했다. 지금도 그런 사정은 변함이 없다. 그런 저런 이유로 노씨의 갤러리엔 고가의 골동품은 드물다.

노씨의 갤러리엔 별 희한한 골동품이 많다. '껄떡쇠는 누구를 위하여…'로 시작되는 긴 제목의 영화 포스터, '승리연필' 광고지, '나비' '진달래' 담뱃갑, 일제 시대 화로, 액자, 도자기, 수차 등 텔레비전의 역사극에서도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물건들이 가득하다. 그의 갤러리에서 60년대 말 인기를 끌었던 '배호 골든 히트 집대성' 레코드판은 최신물에 속한다.

노명섭씨가 지금껏 수집해 되판 골동품은 대략 100만점. 갤러리에 보관 중인 것만도 10만점을 훨씬 웃돈다. 그래서 그의 가게엔 소매 상인뿐만 아니라 '뭐 좀 들어온 거 없느냐?'며 버릇처럼 들리는 나이 지긋한 손님이 많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옵니다. 어떤 이는 연락처를 쥐어주며 물건이 들어오면 연락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기도 합니다". 노씨는 골동품의 먼지를 닦거나 약간 기름칠을 할뿐 살을 붙이거나 수리하지 않는다. 깨진 것은 깨진 대로, 이가 빠진 것은 빠진 대로 맛이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중국의 모조 골동품이 많이 나돕니다. 그런 걸 소장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단돈 5천원짜리 일망정 우리 골동품을 소장하고 후대에 물려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노씨가 골동품 애호가들에게 드리는 당부였다. 문의)054) 853-5870.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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