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식구들의 밥줄을 끌고 출근을 서두른다구십년식 엑셀의 가속 페달을 밟으면

툴툴거리다 서다 다시 기어간다

산업도로를 따라 금호강 건너

망우공원 고갯길로 접어들자

백밀러에 구름이 쏟아져 들어온다

신호등에 막힌 길 위로

방죽에 늘어선 포플러가 걸어 나가고

꽁무니 문 밥줄들 납작 엎드려 있다

초록 구름 겹겹

포개져 흐르는 숲 위로

밥 빌러 가던 마음도

잠시 방생한다

-박진형 '밥經'

이 시의 화자는 아마 동촌이나 반야월 쯤 사는 것 같다. 아니 칠곡도 괜찮고 성주나 고령 쯤도 무방하다. 출근을 위해 구식 엑셀 급의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보니 돈벌이도 별 신통치 않은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서민이다.

경(經)자는 책이나 불경을 이른다. 종교의 교리나 유학의 경서를 뜻하는 이 한자는 동양문화권에는 최고의 권위을 드러낸다.

민중들에게는 밥이 곧 經이다. 말이 더 필요없는 진리이다. 지난 한 해 우리 모두는 따뜻한 밥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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