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남 전 검찰총장 후임으로 16일 이명재 전 서울고검장이 내정됨에 따라 검찰조직에 적지 않은 인적.제도적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다.
국민적 신뢰와 엄정한 사정기능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임을 검찰조직 전체가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다.
검찰총장에 외부 인사가 발탁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 신직수 중앙정보부 차장을 임명한 이후 처음이다. 검찰 내부에선 "침체되고 흔들린 조직을 추스를 적임자"라며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 산적한 숙제들=이 전고검장의 내정은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비호남 법무장관(최경원 장관은 서울 출신) -검찰총장'체제가 출범했다는 의미가 있다. 특정지역 편중 인사를 이유로 검찰을 겨냥했던 정치권의 공세는 따라서 상당히 약해질 전망이다.
이런 환경변화 속에서 이 내정자는 최근 잇따른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한 부실수사로 인해 와해된 조직의 기강을 조기에 안정시켜야 한다는 과제를 떠맡게 됐다.
이들 사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물론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에서의 중립 지키기로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는 일이 최우선이다.
인사와 관련, 대검의 한 간부는 "지역 편중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최근의 인사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한 개선책도 시급히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해 최장관이 밝힌 '검사들의 항변권 보장'등을 정착시키기 위한 토대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물갈이 인사 불가피=현재 검사장급 이상 자리 중 광주고검장과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등 두 자리가 공석인 상태다. 여기에 사시 7회의 심재륜 부산고검장, 사시 11회 동기인 김경한 서울고검장.김영철 법무연수원장의 거취 표명이 있을 경우 검사장 승진 폭도 5~6개 자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각영 대검차장이 자리를 옮길 경우 지역안배 차원에서 호남 출신의 김승규(사시 12회) 법무차관이 기용될 공산이 커 보이며, 서울지검장에는 사시 13회의 송광수 법무부 검찰국장.김원치 대검 형사부장.정충수 수원지검장과 14회인 이범관 인천지검장.김진환 대구지검장.정홍원 광주지검장 등이 각축을 벌일 전망이다.
대검 중수부장에는 15회인 김규섭 대검 강력부장.김종빈 법무부 보호국장.이정수 대전지검장 등이, 대검 공안부장에는 역시 15회인 정진규 대검 기획조정부장.황선태 대검 감찰부장.조규정 청주지검장과 16회의 김재기 춘천지검장 등이 거명된다.
이와 함께 사시 17회의 임승관 동부지청장과 안대희 서울고검 형사부장.신건수 서울고검 검사 등의 검사장 승진 대열 합류가 점쳐지며, 18회에서는 홍석조 남부지청장.고영주 서부지청장.홍경식 북부지청장과 문영호 서울고검 검사 등이 승진대상자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요일인 지난 13일 밤 신승남 전 검찰총장을 경질할 때부터 검찰조직을 근본적으로 쇄신하기 위해 '검찰 내부를 잘 아는 외부인사'를 기용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이 검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사실에 김 대통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래서 김 대통령은 검찰조직과 인사를 원점에서 뜯어고칠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 가장 최근에 검찰을 떠난 인사들을 집중 검토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김학재 민정수석은 대통령 인사참고 자료인 '존안파일'에 검찰 내부의 고검장급 8명 이외에 지난해 검찰을 떠났던 고검장 출신들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은 이 중에서 청렴도가 높고 이른바 TK(대구.경북) 출신으로 지역적인 문제에서도 야당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이명재 변호사를 낙점했다.
청와대측은 그러나 이 내정자의 완강한 고사에 직면해야 했다. 이 내정자는 총장 경합자인 김경한(경북고 43회) 현 서울고검장이 사법시험에선 동기(11회) 지만 경북고 1년 후배라는 점 등을 들어 "나는 변호사로 남고 싶다"며 완곡하게 거절의사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이 내정자에 대한 애착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15일 반부패 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를 피력했지만 청와대는 이미 14일부터이 내정자에 대한 집요한 설득에 들어갔다. 급기야 16일 낮 김학재 민정수석이 이 내정자를 직접 찾아가 김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하면서 이 내정자의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사흘간 벌어졌던 청와대측과 이 내정자의 줄다리기 때문에 일부 언론은 '김경한 고검장이 유력하다'고 잘못 보도하기도 했다.
"중임을 맡게 돼 책임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명재(59) 검찰총장 내정자는 16일 오후 11시50분 서울 청담동 자택 앞 골목길에 도착,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에게 이렇게 각오를 밝혔다.
지인들과 저녁식사 등을 한 뒤 귀가한 그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나머지는 취임 이후 밝히겠다"고 했다.
서울고검장이던 지난해 5월 신승남 전 총장의 취임을 하루 앞두고 "후배들의 승진 폭을 넓혀주겠다"며 27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났던 그다.
당시 후배 검사들로부터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8개월 만에 31번째 검찰총장으로 어깨가 무거운 복귀를 하게 됐다.
그때 그는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그리고 잘못하고도 그 값을 치르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각자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검찰이 바로 서는 길입니다"라는 퇴임사를 남겼었다. 그는 경북 영주 출신으로 경북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지 5년 만인 197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시 합격 전 한때 외환은행에서 일한 적도 있다. 검사 생활은 늦었으나 특수수사, 특히 경제범죄 수사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이철희.장영자씨 부부 어음사기.영동개발비리.5공비리.서울대 음대 입시부정.환란.세풍(稅風) 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맡았다.
그가 장영자씨 사건을 처리한 모습을 지켜본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 찬사를 하기도 했다.후배 검사들 사이에선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성품과 겸손한 태도 때문에 '가장 존경하는 선배'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그는 대검 중수부 2.3과장과 서울지검 특수1부장, 대검 중수부장.부산 고검장 등을 두루 거친 뒤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재직해 왔다.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인 부인 유근향(57) 씨와 2남1녀.그의 형 경재씨는 전 중소기업은행장을, 동생 정재씨는 전 재경부 차관을 지냈다.
신임 검찰총장에 이명재(59)변호사가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고향인 영주 풍기 에서는 이씨가 일찍 고향을 떠난 관계로 지인이 별로 없으나 "어려운 시기에 검찰 조직을 바로 세우는 총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반응이다.
이씨는 풍기 동부리 546번지에 태어나 자라다 외가인 영주시내에서 영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로 옮긴 때문이지 고향에서도 이씨의 학창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고향에는 또한 가까운 친.인척이 없는 등 특별한 연고가 없는 상태다.
그러나 영주 풍기지역민들은 이 검찰총장 내정자의 친형인 경재(전 중소기업은행장)씨와 동생 정재(전 재경원차관)씨 등 3형제가 영주출신이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이 내정자 바로 아랫집에 살았다는 김성영(55.풍기읍사무소 공무원)씨는 "특별한 만남은 없었으나 지역출신인 이변호사가 각종 게이트사건으로 추락할대로 추락한 검찰조직을 바로 세워 신뢰받는 검찰을 만드는 검찰총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김대중 대통령이 이명재 전 서울고검장을 신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검찰조직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대통령은 지난 15일 반부패 관계장관회의에서 검찰이 잘못해서 정부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현 검찰 지휘부를 강하게 질책, 대대적인 개혁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명재 변호사의 검찰총장 임명은 바로 김 대통령이 검찰개혁 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김 대통령은 이 변호사를 검찰총장으로 낙점하기까지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13일 신승남 전 총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직후 곧바로 인선에 착수했으나 의중에 두고 있는 발탁 요건들을 구비한 인물을 찾는데 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고민 끝에 이 변호사와 김경한 서울고검장, 김각영 대검차장 등이 최종 후보자로 압축됐다. 그러나 김 차장은 2000년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수사를 총지휘했던 서울지검장 경력이 감점 요인으로 작용해 막판에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 대통령은 이 변호사와 김 고검장을 놓고 저울질한 끝에 이 변호사를 낙점했다. 이 변호사가 낙점되기까지 법조계에서는 외부기용론과 내부기용론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내부기용론이 더 큰 세를 얻어가고 있었다. 이 때문에 15일 오전까지만 해도 김 고검장이 새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처음부터 외부인사 기용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고검장을 발탁하려 했다면 15일 밤에 발표했을 것』이라며 이를 뒷받침했다.
김 대통령이 이 변호사를 새 검찰총장으로 낙점한 데는 이같은 외부인사 요건 이외에 몇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위기의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검찰조직을 잘 아는 외부 인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들어 맞는데다 경북 영주 출신으로 출신지역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뛰어난 업무추진력으로 검찰 내부에서 높은 신망을 받고 있다는 점이 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정경훈기자 jgh03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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