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컴보이와 자치기

설이 다가왔다. 얼마 전만 해도 도시의 어린이들은 '아스팔트 보이'라고 하였는데 요즘의 아이들은 '컴 보이'라고 할 정도로 컴퓨터만 좋아한다. 특히 게임을 좋아하고 이를 방송하는 전문방송채널까지 생길 정도다. 곧 설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설날이 다가와도 별 의미없이 그저 부모 손에 끌려 다니며 설을 보내는 것 같다.

옛날에는 모든 어린이들이 설날과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늘날처럼 물자가 풍족하지 못해 평소에는 발가락이나오고 뒤꿈치가 나오는 양말을 신다가 설이 되면 대목장날 설치레로 엄마가 사주는 양말을 신고 붕붕 날아갈 듯이 걸어다녔다.해어져 무릎과 팔꿈치가 나온 내복 대신 새 내복을 얻어입는 설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바늘로 기운 해어진 고무신

대신 설빔으로 사준 새 신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설전 며칠간은 제대로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 드디어 그믐날 밤, 장작 서리를 해다가 군불을 넣고 친구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눈썹이 쉴까봐 잠들지 못했고, 더러 곯아떨어진 친구녀석의 눈썹에 하얀 칠을 해서 놀래키기도 했다.

설날 아침, 설빔을 차려입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친척 어른들과 동네 어른들께 세배하고 떡국과 맛있는 제수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윷놀이와 풍물놀이는 온 동네를 잔치 판으로 만들었고, 온 동네 사람이 듣도록 크게 확성기를 틀어놓던 동네 노래자랑 대회는 설 기분을 한껏 돋우었다.

객지에 돈벌러, 공부하러간 누나 오빠 형님 삼촌 먼 친척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와서 풀어놓을 때는 가슴 설레며 지켜보았다. 그때처럼 동구 밖에서 소나무 가지로 상모를 만들어 돌리고, 연도 만들어 바람 잘 부는 동산에 올라서 하늘높이 날리고 싶다.

어디 구석진 곳에 바람을 피해서 쪼그리고 앉아 군밤도 까먹고 싶다. 고향의 그때 그 친구들과 썰매타기, 목 스케이트 만들어 타기, 팽이 돌리기, 자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딱지치기도 하고, 딱총을 만들어 뻥뻥 쏘며 골목을 누비고 다니고 싶다.아 그리운 시절이여.

장명익(산부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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