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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파일 이곳-경주 학동분교 마지막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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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내남면 비지1리 545번지, 경주초등학교 학동분교 3학급 15명의 아이들이 18일 '그들만의 졸업식'을 가졌다. 단 두 명뿐인 졸업생 재득이와 진희는 내일(19일) 한번도 다녀본 적이 없는 본교(경주 초등학교)에서 졸업식을 갖기로 돼 있다.

두 아이에겐 오늘이 학동분교 마지막 등교이다. 나머지 13명의 아이들도 금요일 종업식을 끝으로 학동분교를 떠나야 한다. 1963년 개교 이후 재득이와 진희를 포함해 753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학동분교는 18일 마지막으로 전교생이 출석한 것이다.

덩그렇게 놓인 철제 기름난로가 타오르고 있지만 그들만의 졸업식이 열린 교무실은 썰렁하다. 며칠 전부터 짐을 옮기느라 아이들의 솜씨자랑 게시판도, 책도, 교육자료도 본교로 옮겨버린 때문이다.

그러나 3학년과 5학년 복식반의 담임 최병걸 선생님의 멜로디혼 반주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엄숙하기는커녕 즐겁기만 하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마련한 졸업잔칫상에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조무래기들은 아직 졸업식 노래의 곡조가 얼마나 구슬픈지, 멜로디혼의 음색이 얼마나 우울한가를 깨닫지 못한 게 틀림없다. 6학년생 재득이와 진희가 가끔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학동분교는 전교생 15명 중 5명이 한집안의 형제간이거나 자매간이다. 4학년 선미와 2학년 미례, 1학년 진미는 세자매가 함께 다닌다. 선미와 진미는 같은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받았다. 6년 내내 단 두 아이가 짝꿍으로 지내다 졸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학동분교에는 치맛바람이 없고, 이지메(집단괴롭힘)가 없고 가정방문도 없다. 오히려 새로 부임해온 선생님이 막걸리 몇 통 사들고 동네 어른들을 찾아 인사를 드릴 정도다. 체육수업은 학년 구분이 없다. 15명이 다 모여야 축구라도 한번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식장에 모여 앉은 15명의 아이들은 각자가 정성들여 써온 편지를 읽는 동안에도 키들키들 웃음을 흘린다. 난생처음 쓴 편지인데다 전교생이 죄다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읽자니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닌가보다.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종이를 덧대 꼭꼭 숨겨가며 써온 편지였다. 폐교라는 어려운 낱말의 의미도, 낯익은 작은 공간의 소중함도 알 턱이 없는 1학년 진미는 단 세 줄도 쓰지 못한 편지를 자랑스럽게 펼쳐놓는다.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챈 5학년 소현이는 이 다음에 중학교나 큰 학교 가더라도 기죽지 말자며 스스로 다짐이라도 하듯 편지를 읽는다.

강학순, 최병걸, 황화순 세 분의 선생님들은 조촐한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우울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졸업하는 두 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13명이 큰 걱정이다.

기껏 서너 명, 대여섯 명이 모인 복식반에서 느긋하게 공부해온 아이들이 40여명이 꽉 찬 교실, 빡빡한 수업 일정에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악명'을 떨치던 최병걸 선생님이 요 며칠 전부터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이유를 아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평소와 달리 발표할 때마다 성가시게 자리에서 일어서게 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조무래기들은 알 턱이 없다. 장난꾸러기인 3학년 세윤이는 발표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싫다고 대놓고 불만을 토로한다.

경주시 내남면 비지1리 마을 어귀에 자리잡은 학동분교는 한때 이 마을의 자랑이었다. 산골마을에 들어선 유일한 신식건물이기도 했지만 1963년 박달초등학교 학동분교로 시작, 1966년에는 6학급을 가진 학동초등학교로 정식인가를 받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에는 전교생이 270여명에 이르는 꽃같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학동분교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2002년 2월 끝내 폐교의 운명을 맞이했다.

전교생이 고작 15명인 학동분교, 정문 앞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학교를 둘러싸고 심어놓은 나무가 벽돌담장을 대신하는 곳. 교정 곳곳에 세상을 배우는 어린 영혼들의 구김살없는 동심과 성장의 아픔이 배어있다.

이제 학동분교의 아침은 흙냄새와 햇볕냄새 가득한 아이들의 웃음대신 종달새의 노래 소리로 시작될 것이다. 아이들이 떠난 이 학교를 작업실로 쓰게 될는지도 모를 어느 화가는 아이들의 빈자리를 얼마나 충실하게 채워낼까.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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