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미류나무 손금 타고 흐르면서 생각한다.

강의 끝은 어딜까.

맨발에 실려서 아픈 눈을 뜨는 봄,

잎들은 줄을 열고 길눈을 뜨고 있다.

하나 피고 둘 피는 빗줄기의 휘파람 속

땅을 차고 땅을 여는 나무들이 올라온다.

말없는 천 번의 갈림길

마음도 길 밖으로 건너뛰는 봄날

산울음 감아지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골짜기,

그리움의 물살 속을 첩 첩으로 돌아간다.

짧은 봄볕 타고 돌아와 갇힌 설익은 우리의

사랑이야기, 봄날의 마음 밭에 무너지고 이어진다. 천리 또는 만리 앞의

한길 지나 두길 건너 낯설고 낯익은

미류나무 손금을 타고

-이옥진 '미류나무 손금 타고'

시 읽기는 내용을 좇아가면서 읽는 방식과 이미지를 따라가면서 읽는 방식이 있다. 리얼리즘 시는 내용을 좇고, 모더니즘은 이미지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 시는 앞의 두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서정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봄비가 온 후 잎들이 '줄을 열고 길눈을 뜨고 있다'는 표현은 시인의 예민한 촉각을 느끼게 해준다. 봄볕 타고 온 사랑이야기가 무너지고 이어지는 것은 비단 이 시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곧 봄이 미류나무 손금을 타고 온다.

김용락〈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경찰이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 관련 민중기 특검팀의 직무유기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 정치권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특검은 2018~2020년 ...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음란행위를 한 80대 남성이 검찰에 송치되었으며,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해 목격자의 촬영 영상을 근거로 수...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