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르내리는 이른바 '게이트'는 '족보'를 작성해 놓고 읽어야 알듯 말듯 할 정도로 복잡하다. 잇따라 터지다 보니 누가 어느 게이트에 관련돼 있는지조차 아리송하며, 검찰이나 특검에 출두하는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하다는 표정만은 쉽게 느껴진다.
정치적 피해자나 된 듯이 자신을 미화하는가 하면, 한결같이 잘못을 깨닫고 부끄럽게 여기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어 보인다. 이젠 잘못을 저지르고도 오히려 큰 소리치는 세상이 돼 버린 걸까.
사회가 존속하고 지속되는 건 기본적으로 법 때문이 아니라 도덕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층 인사들은 과연 높은 지위에 부합하는 도덕적 양심과 거기에 합당한 도덕적 행위(노블레스 오블리제)를 하고 있는가. 불법과 혼탁으로 얼룩진 정치판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올해는 두 차례의 큰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벌써부터 그 고질병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눈에 띈다.
새 학기를 맞은 초등학교의 학생회장 선거가 기성 정치판을 뺨치는 과열.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학교에서는 후보들이 '당선되면 PC방을 만들겠다' '체육관을 세우겠다' '스쿨버스를 마련하겠다'는 등 선심성 공약이 남발될 정도다.
지방에서도 '축구 골대를 설치하겠다'는 등 그 열기는 별로 진배없다. 게다가 20대 여성 도우미들을 동원하거나 트럭에 수십개의 피켓을 싣고 와 대대적인 홍보전을 벌인다니 기가 막힌다.
유세 때와 당선자가 뽑혔을 때도 건물 옥상에서 대형 현수막이 내려오고, 비둘기 떼를 날리는 장관이 연출되는가 하면, 축제 때의 대학 캠퍼스를 방불케 할 지경이란다. 실제 당선 사례로도 학교에 농구대를 기증하거나 간식.선물을 돌리느라 수백만원을 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과열과 '탈법' 때문에 교사들이 말리고 단속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이 아프게 떠오른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90% 이상이 한국을 '부패 사회'로 인식한다는 한 조사 결과는 충격을 준 바 있다. 더구나 그들이 어른이 되면 부정.부패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우리는 과연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할까. 문득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가치관과 윤리의식을 일깨워 '도덕 사회'를 만들려면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지도층 인사들과 지식인들의 큰 깨우침이 선행돼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우리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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