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부모랑 자녀랑-만화 잘 골라보면 공부는 절로절로

선미(여.수성초교 5년)는 만화 마니아다. 책상 앞엔 자기가 그린 만화 그림 몇 장이 붙어 있고, 책꽂이엔 교과서와 참고서 몇 권을 제외하면 온통 만화책이었다. 그런데 예전 어른들이 즐겨보던 순정 만화나 싸움 만화는 한 권도 없었다.

애니메이션 학습 만화, 그림으로 보는 학습 박물관, 학습그림과학,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교양한문학습만화 등. 공부와 관련된 책은 하나같이 만화로 그려진 것들이다.

"친구들은 모두 만화를 좋아해요. 학교에서 돌려보기도 하고 만화 얘기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해요" 선미의 만화 예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부하기 전엔 만화책 한두권쯤 봐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어요.

책이나 TV에서 본 만화를 연습장에 그리다 보면 걱정도 짜증도 잊게 돼요". 심지어는 잠잘 때도 음악을 틀어놓고 만화를 그리며 잠이 든다고 했다.

걱정스럽지 않으냐고 쳐다보자 엄마 한주희(35)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했죠. 다른 집 애들도 마찬가지라 나무랄 수만은 없다 싶었는데 미술 교사인 애 아빠까지 괜찮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아예 학습 만화를 골라주고 공부에 활용하도록 해주고 있어요".

한씨가 딸의 만화보기에 대한 생각을 바꾼 것은 3학년때. 그러자 만화 때문에 수시로 나무라고 삐지고 하던 모녀 관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해졌다.

함께 서점에 가서 만화를 고르고 집에서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요구에 한층 관대해질 수 있었고, 학습 만화를 꾸준히 권장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라고 했다.

만화 보는 걸 좋아하니 그리는 데도 솜씨가 붙어 있었다. 거실 창문에 못말리는 짱구 엄마 얼굴이 그려져 있고, 연습장이며 스케치북이며 아예 만화 그리기용으로 마련해준 듯 선미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려서부터 가계부 구석구석까지 여백만 보이면 그려대는 통에 숱하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한씨는 이제 만화 교실, 만화 일기 등 만화 그리기 교재까지 사 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저 나이 때는 어떻게든 자기 의사와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는 기술보다는 나타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는데 신경 쓰도록 도와주면 제법 스토리도 만들어가지 않을까 싶어요".

장래 희망을 묻자 선미는 "의사요"라고 대답했다. 만화가는 어떠냐고 했더니 "이렇게 작은 그림을 매일같이 빽빽하게 그려야 한다면 너무 어지러울 것 같다"며 싫다고 했다.

그림으로 배우고 그림으로 놀이를 하는 요즘 어린이들. 그러나 좀 더 지나면 멀티미디어며 영상 같은데 매달리게 될 그들에게 만화는 그저 그 나이에 지나가는 한 때의 유행처럼 보였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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