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촌지 고민

새학기가 시작됐다. 방학 동안 한시름 덜었던 엄마들은 다시 불안하다.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으니 '인사'는 드려야 하는데…. 봉투를 주면 얼마를 주고 선물을 주면 무엇을 주나, 아니면 눈 딱 감고 모른 척 하나. 고민에 빠진 엄마들은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에 무릎을 치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선생님께 촌지라면 펄쩍 뛰지만 이웃의 베테랑 아줌마는 "몇 푼 아끼려다 애 힘들게 하지말고…"라며 충고한다. '그래 다 자식 위한 일이다.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고 최소한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겠지. 에라, 낯뜨겁지만 선생님 호주머니에 봉투 하나 찔러 넣고 오자, 그러면 만사형통 아닌가'.

이 화창한 봄, 엄마들의 고민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 고민은 자녀가 초등학생일수록, 또 저학년일수록 심하다. 그러나 촌지, 선물 따위 절대 건네지 말자고 외치는 학부모, 선생님들도 많다. 세상 이치 다 안다는 듯 외치는 옆집 아줌마 말 말고 새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학부모1=내 아들 딸(당신들의 자녀), 그렇게 못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특별히 예뻐해 주지 않아도 잘만 커요. 어떤 교사는 촌지 한 번 건네면 두 달 예쁘게 봐준대요. 1년에 6, 7번 찾아갈 능력되거든 그렇게 하세요.

♣교사1(대구 도원초등)=촌지를 주고 싶은 마음만큼 교사의 편이 되어주십시오. 촌지 10만원보다 교사의 처우개선 의견을 제시해 줄 것을 교사들은 더 원합니다. 더 큰 촌지는 참교육을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사들에게 따뜻한 지지의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학부모2=학부모의 즉각 반응이 문제예요. 애들이 학교 다니다보면 선생님께 야단맞는 건 당연한데, 조금만 야단맞아도 촌지를 안 건네 그렇다고 지레짐작해버립니다. 좀 의연하게 대처합시다.

♣교사2(대구 욱수초등)='제발 촌지 좀 받아주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들이 있어요. 저도 애 키우는 엄마예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촌지 받았다고 그 애만 편애하는 교사는 세상에 없어요. 있어도 극히 드물고요.

♣학부모3=촌지 안 건넸다고 불이익 운운하지만 촌지 안 건네는 학부모들이 더 많아요. 그리고 학교가 가짜와 에누리가 판치는 무슨 암시장인가요? 세금 잘 내고 학비 꼬박꼬박 내는데 웃돈은 무슨!…. 저는 아이 초등학교 6년 동안 촌지, 선물 한번도 안 했어요.

♣교사3(대구 신천초등)=요즘은 학생이 잘못해도 야단을 못 칩니다. 야단치면 그 다음날 어머니가 '봉투'들고 찾아옵니다. 잘못한 애를 꾸짖는 교사의 양심이 '봉투' 탐닉으로 비춰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엄마들은 아직도 고민이다. 대구 신서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고민 딱 접고 오늘 저녁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음식점을 찾아 '촌지예산'으로 가족파티를 열라고, 그래도 예산이 남으면 몽땅 아이들 책값으로 써버리라고 당부한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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