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길 다래송이 한 두 개만 따 먹어야지, 그 달콤한 것 한 개만 더 한 개만 더 허기진 배 달래 주었지. 그때마다 어린 계집애가 처녀로 부풀어 올라 무명 속곳 초경 묻은 자리 가위로 도려내어 핀 꽃.
장롱 속 포개뒀던 속살 햇볕에 말리는 날은 다시 꽃으로 피어나고 자식 아이들까지 보듬어주는 큰 우주, 그 동안 숨 조였다 풀었다 업고 다닌 것 너 때문에 따뜻했던 시간.
- 이정희 '목화꽃'
아마 요즘이 목화꽃 피는 계절인가보다. 등교길에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있는 다래를 눈대중 해두었다가 하교길에 마음 조리며 몇 개씩 따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시인에게도 그때 그 달콤하던 맛이 아름다운 시심을 키운 것인지 모른다.
목화꽃 문양을 계집애의 무명 속곳에 묻은 초경의 흔적으로 표현한 구절은 참신하고 아름답다.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자란 세대에게는 그 상상력도 서정적일 수밖에 없는가 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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